더불어민주당이 오늘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려고 하는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설치법엔 지금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대신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를 설치하고 위원장을 정무직 공무원으로 바꾸는 내용도 포함됐다. ‘심의 기능의 민주성과 책임성 강화’가 목적이라는데, 진보 성향의 언론단체들마저 우려의 목소리를 내 왔다.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의 방심위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봉급도 나라에서 받지만 신분은 민간인인 자리다. 방심위가 “독립적으로 사무를 수행하는 방심위를 둔다”는 방통위 설치법에 근거한 민간기구이기 때문이다. 방통위-방심위 구도를 이렇게 짠 건 2008년이다. 민간기구 방송위원회 대신 행정기구 방송통신위원회를 출범시키면서도, 심의 기능은 굳이 민간에 그대로 둬서 방심위를 만들었다.
이유는 명백하다. 국가권력과는 독립적으로 공정하게 심의하라는 것이었다. 일제 강점과 권위주의 체제를 겪은 우리 국민들이다. 국가의 직접 심의는 검열이나 보도지침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방심위는 취지대로 운영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당시 방심위는 지상파 라디오가 편파적으로 허위사실을 방송하는데도 ‘우리 편 봐주기 심의’를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윤석열 정부 방심위는 비판 언론에 대한 편파, 표적 심의 논란을 넘어 ‘민원 사주’ 의혹까지 일면서 사무실이 압수수색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실정이니 방심위의 개혁은 독립성을 확보하고, 위원 구성이나 안건 의결에 중도파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뤄지는 게 상식적이다. 한데 반대로 심의위원장을 공무원으로 만들려 하니, 방심위가 사실상 정부 기구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걱정되는 건 또 있다. 최근 민주당은 방송법에서 ‘공정성’ 문구를 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공정성 심의가 비판 언론 탄압 도구로 악용돼 왔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폐지하자는 건 납득이 되지 않는다.
방심위가 공정성 심의를 안 하던 때가 있었다. 5공 시절 방심위는 ‘방송 뉴스가 왜 각하 찬양 일색이냐’고 따지지 못했다. 공정성 심의의 정파적 악용이 문제라면 이제 칼자루를 쥔 정부 여당이 악용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심의위원장을 정무직 공무원으로 만들면서 공정성 심의까지 폐지하려 한다니, 따로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산다. ‘개정 방송법에 따라 11월까지 이사진이 교체되는 KBS 등 지상파가 마음 놓고 정권에 편파적인 보도를 하라고 판을 깔아주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작금의 방송심의 거버넌스가 실패했다는 걸 부인하긴 어렵다. 공당(公黨)들이 소수의 강경파에게 휘둘리고, 국회의원들이 유튜버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현실도 방심위가 저널리즘 기준에서 용납되기 어려운 지상파 방송 진행자 등을 방치했던 것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고 개혁한다며 개악을 해서는 안 된다. 위원장이 국회의 인사청문과 탄핵소추 대상에 포함된다고 방심위의 정치권 종속이 갑자기 더 심해지진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을 순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로부터의 심의 독립이라는 이상이 형해(形骸)만 남았다고 아예 포기해 버리는 건 곤란하다. 그랬다간 ‘5공 시절 방심위’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도 순식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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