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었던 자리에서 사람 아닌 자리로 밀려나는 경험을 하게 되었을 때 사람은 어떤 눈과 어떤 목소리를 덧입게 되는 것일까요.”
―이제니 ‘새벽과 음악’ 중
백민석 소설가삶의 어떤 요소가 빼어난 작품을 창작하는 데 지렛대 역할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지난 세기에 문학을 시작한 필자는 작가의 불행이, 특히 가난이 그런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당시 필자가 공부했던 작가들은 고생하며 살다 죽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이제니 시인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동료 시인을 생각하며 고통과 불행이 시에, 그리고 그 시를 읽는 독자들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 잔잔한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지만 또 다른 세상도 있다. 이미 1990년대에 창작자가 제대로 된 창작을 하려면 적잖은 비용이 든다는 주장이 나왔다. 현대에서 가난은 창작의 지렛대가 아니라 족쇄다. 필자는 문예창작과를 다녔는데, 이 결핍투성이 작가 지망생에게 불행투성이 옛날 작가들의 작품들을 가르치는 교수들이 이미 가난이나 불행하고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요즘 작가들이 겪는 불행은 지난 세기에 작가들이 겪었던 불행의 종류와는 여러모로 다르다. 내가 정성을 들여 리뷰를 썼던 작품을 쓴 한 외국 작가는 성폭행 사실이 드러나 사라졌고, 또 한 작가는 가족 간 성폭력을 묵인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어떤 철학자는 아내를 살해했고, 적잖은 작가들이 표절 시비가 붙거나 우울증을 겪거나 성 정체성으로 어리석은 비난을 받아 창작의 침체기를 겪는다.
현대 세계에서 상당수 창작자를 불행하게 만드는 주된 요인은 그들의 작품이 돈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돈이 되지 않은 창작자가 받는 무시와 무례와 은근한 멸시는 창작의 의욕을 꺾어놓는다. 그럴 때 시인의 표현처럼 창작자는 “사람이었던 자리에서 사람 아닌 자리로 밀려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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