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하는 세계[내가 만난 명문장/김윤철]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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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 지배의 이상적인 신민은 확신에 찬 나치나 확신에 찬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사실과 허구 사이의 구분(즉 경험의 현실성), 진실과 허위 사이의 구분(즉 사유의 기준)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리베카 솔닛 ‘오웰의 장미’


김윤철 전 국립극단 예술감독·연극평론가
김윤철 전 국립극단 예술감독·연극평론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가장 큰 위협은 거센 전체주의적 물결이다. 문화비평가 리베카 솔닛의 생각도 그런 것 같다. 그는 역저 ‘오웰의 장미’에서 정치철학자 한나(해나) 아렌트의 이 명언을 인용하는데, 그 말이 얼마나 시의적절한지. 진실이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탈진실에 광분하는 신흥 종교가 러시아를 정점으로 한 공산주의 국가뿐만 아니라 미국을 선두로 한 소위 민주주의 국가 체제에서도 만연하다. ‘폭정’의 저자 티머시 스나이더는 “탈진실은 전체주의의 전단계”라고 규정했지만, 필자는 전체주의가 임박한 이념이 아니라 이미 우리 곁에 다가온 실체가 아닌가 의심한다.

우리는 전체주의를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의심해야 한다. 맹목적으로 ‘네 편’의 이야기를 부정할 것이 아니라 ‘내 편’의 이야기도 의심해야 한다. 스나이더의 말을 좀 더 인용해 본다. “의심은 건전하고 바람직하다. 의심하면 신중해진다. 자신의 주장에 대해 겸손해지고 대안적 관점에 대해 너그러워진다. 의심은 광신의 예방약이다. 의심하는 세계는 더 나은 세계다.”

유튜브의 선동적 음모론이 난무하는 지금의 현실은 우리로 하여금 의심할 필요를 일깨워 준다. 좌우, 선악, 흑백 등 조작된 주장들에 여과 없이 노출되는 현대인들. 그 위험하고 불안하고 초라한 존재의 환경 속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지킬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진실, 정의, 공의를 회복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재미없어도, 지겨워도 할 수 없다. 예술이, 특히 연극이 진실의 가치를 회복하는 일에 앞장서 주기를 기대한다.

#전체주의#탈진실#리베카 솔닛#한나 아렌트#티머시 스나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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