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과 열기 속, 거의 알몸의 남자가 무거운 돌을 인 채 힘겹게 산을 오르고 있다. 육중한 돌 무게에 남자의 등은 굽었고, 온몸의 근육은 울근불근 드러나 있다. 바닥에는 기괴한 형상의 동물들이 득실거린다. 대체 그는 누구고, 무엇 때문에 이러고 있는 걸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 이야기는 많은 화가에게 인기 있는 주제였다. 16세기 이탈리아 미술의 거장 티치아노도 ‘시시포스’(1548∼1549년·사진)를 실감 나게 묘사했다. 시시포스는 코린토스의 왕으로 그리스인들에겐 가장 교활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교활함과 현란한 말솜씨로 죽을 고비를 두 번이나 피했지만, 신들을 기만한 죄로 제우스가 결국 그를 저승으로 끌고 가 끝없는 고통 속에 가두었다.
그림에서 시시포스는 거대한 돌을 이고 산의 경사면을 올라가고 있다. 정상에 도착하면 돌은 다시 아래로 굴러떨어질 테고, 그 돌을 또다시 지고 올리는 과정을 영원히 반복해야 한다. 그것이 그가 받은 형벌이었다. 그의 뒤로 펼쳐진 세계는 어둡고 음습하며 뱀과 괴물들이 우글거린다. 앞쪽은 용광로처럼 불과 열기로 가득하다. 시시포스의 구부정한 등과 드러난 근육은 헛된 노동의 고통을, 뱀과 어둠은 지옥 같은 현실을 상징한다.
시시포스의 몸은 빛을 받아 밝지만, 얼굴은 어둠에 묻혀 있다. 이는 각각 찬란했던 과거와 암담한 미래를 암시한다. 그의 표정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지만 완전히 절망한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묵묵히 인내하고 견디면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믿거나 탈출을 궁리 중일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평생 지고 가야 할 ‘시시포스의 바위’가 있기 마련이다.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면 포기를 택하기 쉽다. 16세기 그림은 우리에게 말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옥보다는 이승이 낫다고. 아무리 세상이 지옥이어도 끝까지 견뎌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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