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차려입은 귀족 청년이 집시로 보이는 젊은 여자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그녀의 미모에 매료된 것인지, 달콤한 말에 홀린 것인지, 청년의 표정에는 호기심과 애정이 가득하다. 여자는 다정한 미소를 띠며 청년의 손금을 읽는 척하지만, 다른 손으로는 그의 손가락에 끼인 반지를 슬그머니 빼내고 있다.
16세기 말,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는 로마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풍경을 화폭에 옮겼다. ‘점쟁이’(1594년경·사진)는 23세의 카라바조를 로마 화단에 알린 그의 초기 대표작이다. 같은 제목, 같은 구도로 제작된 두 점 중 첫 번째 버전이다. 당시 로마 집시들은 거리에서 점술이나 손금 보기, 공연, 절도 등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 때문에 종종 사기꾼 취급을 받았다. 그림 속 청년의 손금을 봐주는 점쟁이 역시 사기꾼에다 절도범이다.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는 관객이라면 누구나 금세 속임수를 알아차릴 수 있지만, 정작 귀족 청년만은 아무것도 모른 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그가 속은 이유는 명확하다. 호기심과 외모에 끌려 경계심을 내려놓은 탓이다. 사기꾼의 달변과 친밀한 태도에 판단력을 잃었고, 결국 소중한 것을 지키지 못했다. 청년은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미모의 집시 여인을 의심 없이 믿었을 것이다. 카라바조는 그 신뢰가 한순간에 배신으로 변하는 찰나를 포착하며, 화려하고 달콤한 말 뒤에 전혀 다른 의도가 숨어 있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400여 년 전에 그려졌지만 ‘점쟁이’는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도 조심하고 경계하라고 말하는 듯하다. 화려한 외양과 그럴듯한 말에 취하면, 본질을 꿰뚫어 보는 힘을 잃는 법. 눈앞의 호의보다 숨은 의도를 읽는 예리한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거짓과 기만이 판치는 세상에서 우리를 지켜줄 마지막 방패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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