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의 견지낚시, 박물관 수장고에서의 시간여행[김창일의 갯마을 탐구]〈130〉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3일 2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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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박물관 수장고에 들어갈 때면, 소장품마다 켜켜이 쌓인 시간과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수장고는 시간 보관소라는 느낌을 받곤 한다. 유물 하나하나에 새겨진 세월의 나이테에는, 만들어지고 사용되다가 박물관으로 오기까지의 저마다 사연이 담겨 있다.

어느 날 어로 도구가 있는 수장고에서 바늘이 세 개 달린 삼봉낚시와 다섯 개 달린 오봉낚시를 살펴봤다. 옆에서 낚싯바늘을 함께 관찰하던 동료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봐도 물고기가 물 수 있는 형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그게 고기가 물어 낚시하는 방식이 아니라 잉어나 숭어처럼 큰 물고기가 낚싯바늘 위로 지나갈 때 낚아채 걸리게 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낚싯바늘과 연결된 견짓대(납작한 얼레 형태의 민물 어구)는 한국에만 있는 고유의 낚싯대라고 덧붙였다. 견짓대에 대해 설명할 때, 142년 전 조선을 찾은 한 외국인이 떠올랐다. 그는 한강에서 견지낚시를 하는 장면을 관찰하고 기록했다.

“빙판 위에는 한 무리의 어부들이 있었는데, 그들 대부분은 얼음 구멍을 뚫기 위한 도구를 갖추고 썰매 하나씩을 끌면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물고기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이 썰매 위에 앉는다. … 한양에서 나날이 소비되는 생선은 이러한 방법에 의해서 공급되어지는 것이다. 그 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의 수로 보아, 한강 주변의 강둑을 따라 밀집한 마을에 사는 주민들의 주업이 고기잡이라 해도 무방할 것 같다.”

1883년 미국인 퍼시벌 로웰이 3개월간 조선에 머물며 쓴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의 한 구절이다. 그는 겨울에는 강이 얼고, 괭이질은 3월 중순이 돼야 가능하므로 강변 마을 주민들은 땔나무를 하거나 어업에 종사한다고 덧붙였다. 한양 백성들에게 물고기를 공급할 정도로 한강에서 얼음낚시를 하는 인구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얼음견지 장면을 촬영한 사진이나 사진엽서를 통해서도 로웰의 기록은 과장이 아니다.

한강변 사람들에게 견짓대는 필수품이었다. 견지낚시는 겨울뿐만 아니라 사시사철 이용됐다. 조선 명종 때 대제학을 지낸 정사룡의 문집 ‘호음잡고’(1551년)에 수록된 시에는 쪽배를 타고 견지낚시를 하는 모습이 묘사돼 있다. 겸재 정선도 회화 ‘소요정’(1742년 무렵)에서 한강 견지낚시 장면을 그렸다. 실제로 얼음견지 못지않게 배견지 역시 활발했다. 한강을 개발하면서 낚싯배를 띄울 수 없게 돼 배견지는 단절되다시피 했다. 다행히 여울견지는 견짓대 재질만 바뀌었을 뿐 지금도 많은 사람이 즐기고 있다. 깊이가 무릎에서 허리쯤 오는 얕은 물이 낚시하기에 적당해 아이들도 쉽게 접하고 익힐 수 있다. 얼음견지와 배견지는 주로 한강과 대동강에서 이뤄진 반면에 여울견지는 물 흐름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능하다.

박물관 수장고에 가지런히 보관돼 있는 수많은 견짓대를 보며 짧은 시간여행을 했다. 한강, 대동강, 금강, 영산강, 낙동강 혹은 이름 모를 작은 하천에서 보냈을 시간을 견짓대는 기억하고 있을 터이다. 물고기를 잡아 올리던 손의 온기와 제 고향 강물 냄새를 간직한 채.

#박물관#수장고#유물#낚시#견짓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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