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칡과 등나무가 얽힌 상태를 갈등(葛藤)이라 한다. 이는 상반된 목표나 욕구로 인한 충돌을 뜻하는 말이다. 칡과 등나무라면 둘 중 하나를 잘라내면 갈등이 사라지지만, 사람 간의 대립은 양측 주장이 그 나름의 타당성을 가질 때가 많다. 이럴 때 한쪽 손을 일방적으로 들어주는 것은 온당치 않다.
바다를 둘러싸고 곳곳에서 갈등이 표출된다. 가을이면 서해의 낚싯배 선주들은 문전성시를 이루는 주꾸미 낚시객을 태우느라 분주하다. 조과(釣果)가 좋을 때는 초보 낚시꾼도 수백 마리씩 잡는다. 어민의 주꾸미 어획량 대비 낚시 조획량 비중이 78%에 이른다. 어선에서 100마리를 잡으면, 낚싯배에선 78마리를 낚는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봄에 통발로 주꾸미를 잡는 어업인은 낚시꾼이 주꾸미 씨를 말린다며 하소연한다. 낚싯배 선주들은 주꾸미를 어민만 잡으라는 법이 어디 있냐며 목청을 높인다. 매년 반복되는 갈등이다.
주꾸미 외에도 어업 생산량 대비 낚시 조획량 비중이 높은 어종으로 한치, 갑오징어, 문어, 갈치 등이 있다. 동해의 문어잡이 어업인은 낚싯배가 문어를 무분별하게 포획한다고 여긴다. 강원의 몇몇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문어낚시 금지’ 조례안을 두고 시끄러웠던 적도 있다. 남해안의 갈치 역시 낚시 어획량 비중이 높아 낚시로 잡은 갈치의 상업적 판매를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연간 3회 이상 낚시를 즐기는 인구가 700만 명을 웃돈다. 이에 취미 활동이라도 몇몇 어종에 대해서는 어획량 제한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미국, 호주, 뉴질랜드는 하루에 1인당 잡을 수 있는 어종 수량, 어획량, 체장 등을 제한하는 제도를 운영 중이고, 유럽연합(EU) 국가의 70%는 낚시 면허제를 도입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낚시 면허제 도입을 위해 수차례 시행을 검토했으나 낚시인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현재 해수부는 안전한 낚시 환경 조성과 건전한 낚시 문화 확산에 초점을 두고, 낚시어선의 어획량 할당제 도입 등 여러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밤에 불을 밝혀 낙지, 문어, 게, 고둥 등을 맨손으로 잡는 ‘해루질’도 갈등의 중심에 있다. 일부 해루질 동호회가 레저 수준을 넘어 어업에 준하는 싹쓸이 포획을 하는 데 따른 것이다. 동호인들은 어촌계가 지나치게 배타적이며 외지인에게 야박하다고 말한다. 생업권과 레저활동권의 적정선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으나, 지금도 어촌 곳곳에서 충돌하고 있다.
어민들은 일부 낚시 행위가 어자원 감소를 불러와 생계를 위협할 정도라고 인식한다. 해루질이 어촌계가 가꾼 마을 어장을 침범해 전복, 해삼 등 치패를 뿌린 수산물까지 채취하고, 온갖 잠수 장비를 이용해 남획과 불법 판매를 일삼는다는 것이다. 반면 동호인들은 어업권자가 관리하고 조성한 수산물에 대한 소유권 주장은 존중하되, 공유자원인 자연산 수산물에 대해 어민이 주인 행세를 하는 것은 억지라고 반박한다. 양쪽 모두 그 나름의 일리가 있다.
첨예한 갈등을 완화하려면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규제 일변도의 정책은 반발심을 일으킬 수 있다. 갈등 조정을 위해서는 서로 공존할 수 있는 사려 깊은 정책 마련이 중요하다. 그에 앞서 상생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건전한 해양문화 정착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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