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현 칼럼]새 정부 5년 경제 성적 체크리스트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4일 00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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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선에서 실종된 전 정부 경제평가
거듭된 탄핵, 팬데믹에 평가 기회 놓쳐
통상협상·정년연장이 새 정부 초기 쟁점
기업 옥죄는 제도론 성장률 제고 어려워

박중현 논설위원
박중현 논설위원
작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로 시작된 정치·사회적 혼돈이 6개월 만에 일단락됐다. 8년여 만에 세 번째 정부 출범이다. 정상적인 나라, 그것도 선진국 범주에 드는 국가라면 이전 정부의 경제 성적이 다음 정부를 선택하는 최우선 기준이 됐을 것이다. 유권자는 정권의 경제 공약과 이행 능력, 실제 결과를 보면서 더 좋은 리더를 가려낼 ‘선구안’을 키운다. 이번 대선에 대해 해외에선 한국인이 경제·안보 문제에 놀랄 만큼 무관심하다는 평가가 나왔다는데, 황폐화한 정치가 정권의 경제 성적을 매길 기회를 우리 국민에게서 빼앗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 탄핵으로 임기가 조기 종료되면서 경제 성적 평가가 흐지부지됐다. 소득주도성장, 규제 일변도 부동산 정책으로 비판받은 문재인 정부는 임기 말 2년이 코로나 팬데믹과 겹쳐 어디까지 정부 잘못인지 가려내기 어렵게 됐다. 독선과 정쟁의 3년을 보내고 계엄을 선포하며 자멸한 윤석열 정부의 경제 평가도 무의미해졌다. 이런 악순환을 멈추기 위해서라도 오늘 출범하는 정부가 향후 직면할 경제 현안들의 리스트를 미리 점검할 필요가 있다.

새 정부의 첫 경제적 도전은 한미 통상 협상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다음 달 8일을 마감일로 정해 놨다. 일각에선 우리 사정을 설명해 기한을 늘리자고 한다. 하지만 ‘트럼프는 항상 꽁무니를 뺀다(TACO·Trump always chickens out)’는 치욕적 별명에 바짝 독이 오른 트럼프에게 어설프게 예외 인정을 요구하다간 협상도 못 해보고 ‘한국 관세율 OO%’라 적힌 일방적 통지서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대미 수출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자동차·부품 25% 관세, 철강·알루미늄 50% 관세를 낮추는 게 관건이다. 다만 그 대가로 미국 측이 한국인에게 민감한 30개월 이상 소고기, 유전자변형생물체(LMO) 수입 등을 고집한다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그렇다고 일부 여론만을 의식해 무작정 버티다가 경쟁국 일본보다 불리한 조건을 받는다면 한국의 수출 경쟁력 타격은 불가피하다. 새 정부의 대외문제 해결 능력도 의심받게 된다.

7월 중 결정될 내년도 최저임금도 민감하다. 노동계는 2024년 2.5%, 올해 1.7% 등 낮게 정해진 윤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률에 불만이 많다. 문제는 2년 만에 30% 가까이 최저임금을 올린 문 정부 초기처럼 가파르게 올렸다간 550만 자영업자가 벼랑 끝에 내몰린다는 점이다. 대선 후보들이 약속한 대로 30조 원 넘는 ‘2차 추경’을 편성해 자영업자들의 빚을 탕감해주고, 현금을 꽂아줄 경우의 효과는 일시적이지만, 최저임금 부담은 영구적이다. ‘임금 삭감 없는 주 4.5일 근무제’까지 속도를 높인다면 자영업자·중소기업들의 불만은 폭증할 것이다.

정년 연장은 새 정부의 최대 노동 현안이다. 60세인 법적 정년을 임금 삭감 없이 5년 늘리자는 게 노동계 요구다. 더불어민주당은 한국노총과 ‘연내 65세 정년 연장 입법 추진’을 위한 정책 협약까지 맺었다. 대기업, 공기업의 중장년 근로자는 반색하겠지만 임금 부담이 커지는 기업들은 당장 청년고용을 줄일 것이다. 이 문제를 서투르게 다뤘다간 새 정부는 임기 내내 청년층과 중장년층의 세대 갈등 격화로 몸살을 앓을 가능성이 있다.

올 연말 국회에서 통과될 내년도 정부 예산은 과거 어느 때보다 글로벌 신용평가회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볼 것이다. 문 정부, 윤 정부를 거치며 연 100조 원 재정적자가 ‘디폴트’가 된 상황에서 적자 폭이 계속 커진다면 신용평가회사들은 국가신용등급 강등을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정부는 더 비싼 이자로 빚을 내야 하고, 시장금리도 따라 올라 기업·가계의 이자 부담이 커진다. 재정적자를 이유로 기축통화국인 미국의 신용등급을 가차 없이 낮춘 신용평가회사에 ‘우린 미국보다 채무비율이 낮다’는 변명은 먹히기 어렵다.

정부 5년의 종합성적은 성장률과 일자리로 매겨진다. 대선 후보들은 공히 잠재성장률 3% 회복을 약속했다. 대기업의 수출에 크게 좌우되는 한국의 성장률 제고는 대기업의 수익성, 미래 가치를 높인다는 말과 동의어나 다름없다. 작년 한국의 상위 10대 기업 평균 영업이익률은 13%로 미국 10대 기업 이익률 31%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관세전쟁과 경쟁국 중국의 약진으로 수익성은 더 낮아지고 있다. 개미투자자 의견을 들어가며 기업을 경영하라는 상법 개정, 원청 대기업 상대로 하청업체가 파업할 수 있게 하는 노란봉투법 등의 입법이 현실화한다면 기업의 투자는 위축되고 양질의 일자리는 줄어들 것이다. 이런 경제 현안에 새 정부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유권자 하나하나가 관심을 갖고, 결과를 정확히 기억해 둬야만 5년 뒤엔 더 현명하게 정부를 고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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