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근래의 일이었다. 이런저런 대소사로 정신없이 바쁜 날이 이어졌다. 밤에 샤워하고 소파에 누우면 피곤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었고, 체력은 예전 같지 않았다. 몸과 마음에 물이 마른 것 같았다. 그런 일상 끝에 적극적으로 일정을 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시작된 김창열 회고전을 보러 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곳에서 잠시나마 충전됐고 충만했다. 물방울 화가라고 알려진 그의 생은 생각보다 촘촘하게 노출되지 않아서 그가 왜 물방울을 그리는지, 물방울에 담긴 함의는 무엇인지, 작업의 종착역이 어떻게 물방울로 귀결됐는지 속 시원하게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있었는데 그 모든 궁금증이 완벽하게 풀렸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국립중앙박물관과 함께 내부에 전시디자인팀이 있는 국내 몇 안 되는 기관이다. 매번 창의적이고 충실한 전시 연출로 호평을 받는데 이번에는 프랑스의 유명 전시 디자인 전문가인 ‘아드리앵 가르데르’와 협업해 또 한 차원 높은 무대를 보여줬다. 화가의 생애와 물방울의 역사를 시간의 흐름대로 쫓아간 연대기적 구성에서 가장 돋보였던 무대는 마지막 ‘블랙홀’. 불 꺼진 수도사의 방처럼 컴컴한 공간에 걸린 물방울 작품들은 현대미술을 넘어 어떤 종교에 가까운 오라를 풍겼다. 캔버스는 가만 숨을 쉬는 작은 허공이자 우주 같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조용하게 맺히고, 도르르 떨어지는 물방울…. 그 장면과 기운을 생각하면 성수(聖水)가 떠오른다.
큰 스크린에서는 김창열 화백의 인생이 다큐멘터리 영화처럼 펼쳐졌다. 머리카락이 검고 반듯하게 양복을 입은 건실한 인상의 청년은 어느새 머리카락이 세고 넘어질세라 조심조심 걷는 노인이 되어 말한다.
“대학 3년 때는 6·25전쟁이 터졌습니다. 많은 죽음을 보았습니다. 같이 행군하던 전우들 여럿이 한꺼번에 옆에서 폭사하는 것도 보았고, 총알이 귓가를 스치는 일은 여러 번 겪었습니다. 중학교 동창 중에 반 이상이 6·25전쟁 때 죽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죽지 않았습니다. 60년대 중반에는 주머니에 단돈 4불을 전 재산으로 가지고 뉴욕 케네디 공항에 내린 적도 있고, 70년대 초엔 프랑스 파리 근교의 마구간 화실에서 아침을 지어 먹을 쌀 한 톨 없는 신혼 생활을 겪은 적도 있습니다. 저는 굽이굽이 유난히 많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은 것 같습니다. 돌아보면 살아온 인생이 온통 기적의 연속 같아요. 물방울을 그리는 건 모든 기억을 지우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고통과 불안을 물로 지우는 겁니다. 내게 그림은 사자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행위였습니다.”
필자는 어떤 예술 작품이 화가의 생애와 맞물려 이야기될 때 더 격하게 연결되고 흔들린다. 김종학 화백의 꽃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도 설악의 자연에 담긴 그 그림들이 실은 다시 살아내려고 발버둥 친 고행의 증거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와 그림을 따라가다 보면 생의 무거움과 아름다움에 숙연해지고 만다. 김창열 화백은 수시로 침묵에 빠져들어 그의 가족들도 그 안에서 함께 힘들었다고 들었다. 수도사도 아닌데 입을 꾹 다물고 그저 캔버스 앞에 앉는 남편과 아버지라니. 영상에서 그가 조용하게 읊조린 말들은 그의 가족에게도 완벽하게 충실한 해명이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인생은 보이지 않는 부분이 훨씬 많은 빙하 같다. 그리고 미술관에 가면 수면 밑에 있던 그 거대한 덩어리가 보인다. 그걸 본 사람은 잠시나마 순하고 깊은 사람이 된다.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생의 의미 같은 철학적 질문도 던져본다. 내가 미술관에 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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