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사이일수록 커지는 시기심… 질투 받는다면 우월감 즐겨라[강용수의 철학이 필요할 때]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23일 2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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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포도’로 잘 알려진 이솝 우화 ‘여우와 포도’ 이미지.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신 포도’로 잘 알려진 이솝 우화 ‘여우와 포도’ 이미지.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사촌이 땅 사면 왜 배가 아플까?

온라인 댓글이나 소셜미디어에서의 대화를 보면 남을 비방하는 글을 쉽게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타인의 행복과 성공을 시기하는 반응이 적지 않다. 이를 설명하는 가장 유명한 사례로 이솝 우화의 ‘신 포도’ 이야기가 있다.》

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어느 날 여우 한 마리가 포도밭에서 포도를 따먹으려고 뛰어도 보고 나무를 타기도 하며 애를 써보지만 포도가 너무 높은 곳에 달려 있어 실패한다. 그러자 여우는 “어차피 신 포도일 거야!”라고 지레 외면한다. 여우는 포도를 원했지만 얻지 못하는 상황에서 ‘포도가 맛이 없을 것’이라면서 원했던 것을 마치 원하지 않는 척하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도 이와 비슷한 표현으로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는 말이 있다.

이처럼 시기심은 도달할 수 없거나 이루기 어려운 것에 대한 절망에서 비롯돼, 내가 갖지 못하는 것을 남도 갖지 못하게 하려는 못된 마음이다. 이런 시샘은 타인의 행복이나 성공을 인정하지 못할 때 생긴다. 타인의 뛰어난 성취가 나의 실패를 더 도드라지게 만들어 자신을 초라하게 만든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때 나오는 거짓된 말과 행동은 자신의 좌절감에서 시작돼 남의 행복에 흠집을 내고 방해하려는 심리에 기인한다. ‘나는 가질 수 없으니 너도 갖지 마라’는 심보는 단순히 질투를 넘어 남을 나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려는 뒤틀린 심술이다.

예를 들어 좋은 직장에 취직한 친구에게 덕담을 건네는 대신 “그 회사 경영 상태가 좋지 않아 오래 못 버틸 것”이라고 말하거나, 결혼을 앞둔 친구에게 “혼자 사는 것이 훨씬 편하다”라고 충고하는 경우가 있다. 시기심은 이렇게 남의 행복에 불편함을 느껴서 방해하고 깎아내리고 싶어하는 욕망이다.

서양 철학자들도 이러한 시기심을 비판했다. 아퀴나스는 기독교 전통에 따라 시기심을 악덕으로 간주했다. 스피노자는 ‘에티카 3부’에서 “인간은 타고나면서 시기심을 가진다”라고 말하며, 시기심을 일종의 ‘증오’로 규정했다. 그는 시기심을 “다른 사람의 행복에 불쾌감을 느끼고 그의 불행에는 기쁨을 느끼는” 감정이라고 했다. 남의 행복이 나의 불행이 되고,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는 뒤틀린 심리가 바로 시기심인 셈이다.

시기심은 남의 성공이나 행복에 불편함을 느껴 이를 방해하고 폄하하려는 심리다. 북유럽 르네상스의 대표 화가 피터르 브뤼헐 더 아우더가 그린 ‘시기심’. 사진 출처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시기심은 남의 성공이나 행복에 불편함을 느껴 이를 방해하고 폄하하려는 심리다. 북유럽 르네상스의 대표 화가 피터르 브뤼헐 더 아우더가 그린 ‘시기심’. 사진 출처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시기심은 남과 나를 비교할 때 생겨난다. 베이컨의 지적처럼 시기심은 언제나 비교에서 비롯되며 비교가 없다면 시기심도 존재하지 않는다.

행복이 자신에 대한 평가와 타인에 대한 평가를 합한 비교의 감정이라면, 행복은 사람마다 대상과 기준이 다른 상대적인 가치를 지닌다. 반면 시기심이라는 파괴적인 성향은 다른 사람이 좋은 것을 소유할 때 발생한다. 여기서 ‘좋은 것’에는 부, 명예, 소유물, 능력, 지식, 외모, 사회적 위상, 친구 등이 포함된다. 타인의 좋은 것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시기심은, 자신도 그런 것을 갖고 싶지만 그렇지 못할 때 나타나는 정신적, 신체적 반응이다. 이와 관련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의분(nemesis)’과 시기심을 구분하며, 시기심을 탁월성과는 거리가 먼 감정으로 분류했다. 의분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의 행복에 느끼는 고통’이지만, 시기심은 그러한 판단과 무관한 부정적인 감정일 뿐이다.

시기심은 인간이 평등하다는 전제에서 생겨난다. 자신과 비슷하거나 동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행복에 대해 느끼는 특정한 방식의 고통이 바로 시기심이다. 타인의 좋은 것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비교 심리는 인간이 평등하다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비교의 대상도 자신과 비슷한 위치에 속한 사람들이다. “왕은 왕에게만 시기의 대상이 된다”는 말처럼, 시기심은 동등한 지위나 처지에서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할 때 발생한다. 즉, 신분 차이가 아주 큰 다른 계층 사람에게는 시기심을 느끼지 않는다. 가령 유명 연예인이 큰돈을 벌어 집을 샀다는 소식에는 무심하지만, 직장 동료가 부동산으로 대박을 냈다고 하면 시샘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가장 시기심을 많이 느낄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처럼 가까운 사이일수록 시기심이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아예 관심도 없겠지만 친구나 친척, 심지어 가족 사이에서도 상대의 성공이나 행복에 속상해하는 일이 생겨날 수 있다. 같은 가정환경에서 자라난 형제 사이에서 명문대 진학 여부가, 혹은 대학 캠퍼스 커플로 만나 결혼한 부부 사이에서 승진과 탈락은 서로에게 남모를 상처가 될 수 있다.

이처럼 시기심은 제한된 ‘좋은 것’을 함께 추구하면서 자연스레 드러나는 인간의 보편적 본성이다. 누구나 성취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것을 이루지 못하면 분노와 좌절, 아픔과 슬픔, 증오를 경험하게 된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부의 소유뿐 아니라 남에게 보여주려는 과시가 중요해졌기에 소셜미디어처럼 남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는 환경에서는 시기심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이나 열등감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불가리아의 한 교회에 있는 18세기 프레스코화. 그림 가운데의 천사는 금식과 기도를, 오른쪽의 악마는 질투를 상징한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불가리아의 한 교회에 있는 18세기 프레스코화. 그림 가운데의 천사는 금식과 기도를, 오른쪽의 악마는 질투를 상징한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그렇다면 남들이 나를 시기하고 질투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시기심은 결국 상대방이 나의 우월함을 확신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니 질투를 받는 사람은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행복을 즐기면 된다. 질투하는 사람과 적당히 거리를 두고 그들의 질투심을 ‘냉정하게 견뎌’야 하지만 직접 대응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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