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의 시선으로[정덕현의 그 영화 이 대사]〈70〉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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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좋아하는 나영이는 여기 존재하지 않아.”

―셀린 송 ‘패스트 라이브즈’


열두 살에 마음을 나눴던 해성과 나영. 하지만 나영이 이민을 가면서 헤어졌던 두 사람은 12년 후 페이스북을 통해 다시 연결된다. 한국과 미국에 각각 살며 온라인으로 마음을 확인하지만, 만날 수 없어 결국 이별한 그들은 또다시 12년 후에야 뉴욕에서 만나게 된다. 이미 미국인과 결혼한 나영과 그 사실을 알면서도 찾아온 해성은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만 다가갈 수 없는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셀린 송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그린 ‘패스트 라이브즈’는 번역하면 ‘전생’이라는 뜻이다. 굳이 감독이 전생까지 꺼내와 이야기를 풀어낸 건, 여기에 이민자들의 독특한 시선이 있기 때문이다. 이민자들의 입장으로 보면 떠나오기 전의 삶과 떠나온 후의 삶이 마치 전생과 현생처럼 여겨질 수 있다. 또 다른 이름도 생기고, 국적도 언어도 달라지니 말이다. 이른바 ‘경계인’의 삶이다. 그래서 나영은 해성에게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다. “네가 좋아하는 나영이는 여기 존재하지 않아. 근데 그 어린애는 존재했어. 네 앞에 앉아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없는 거는 아니야. 20년 전에 난 그 애를 너와 함께 두고 온 거야.”

이민자 같은 경계인들이어서 갖게 되는 독특한 시선은 도대체 뭘까. 두 개의 정체성 사이에서 차별도 겪었지만, 이제는 그 둘을 모두 자신이라 인정하며 포용할 수 있는 시선이다. 최근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매기 강 감독처럼 두 개의 정체성을 가진 경계인들이 보여주는 독특한 시선이 주목받고 있다. 지나치게 국가에 매몰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고국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갖는 적절한 거리의 시선이 그것이다. 이제 글로벌 시대로 접어든 한국에서도 한 발 떨어져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경계인의 시선이 필요해 보인다.

#패스트 라이브즈#셀린 송#이민자#경계인#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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