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2010년)에서 미자(윤정희 역)는 시를 배우러 간 문학 강좌에서 이용택 시인으로부터 “시를 쓴다는 건 아름다움을 찾는 일”이란 이야기를 듣는다. 그 아름다움은 겉보기의 아름다움이 아니다. 일상에서 보이는 진정한 아름다움, 즉 우리의 가슴에 닿는 삶의 실체를 마주하는 아름다움이다.
강좌를 듣고 시를 써보려 하지만 도통 시상이 떠오르지 않는 미자가 묻는다. “선생님, 시상은 언제 찾아와요?” 그러자 시인이 말한다. 시상은 찾아오는 게 아니라 찾아가서 사정을 해야 줄 듯 말 듯 한 거라고. 그러자 또 미자가 묻는다. “어디로 찾아가요?” 시인은 어디를 정해 놓고 가는 게 아니라 그냥 찾는 것인데, 분명한 건 우리 주변에 있단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얘기했죠? 설거지통에서도 시가 있다고.”
‘시’는 성폭행을 당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여중생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그 죽음에 미자의 손자가 관련돼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 이는 미자가 소녀를 좀 더 제대로 바라보게 만든다. 추모 미사에도 가보고 소녀의 엄마도 만나보면서 미자의 마음속에 소녀의 삶이 구체적인 본질을 드러낸다. 그 소녀가 미자에게 ‘아녜스’라는 이름을 가진 못다 핀 꽃이 되는 과정은, 시를 쓰는 과정과 동일하다. 미자는 추모 미사에서 훔쳐 온 아녜스의 사진을 마치 가족처럼 자기 집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은 ‘풀꽃’이라는 시를 통해 존재의 아름다움은 그냥 보이는 게 아니라 애써 들여다봐야 보인다고 했다. 무심하게 그저 흘러가는 것 같은 복잡한 세상의 모든 것들은 꽃이 되지 못한다. 의미와 가치를 갖기 위해 자세히 봐야 되는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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