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의 인간화’가 일깨우는 행복한 관계의 비밀[고영건의 행복 견문록]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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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건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
고영건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
최근 ‘펫팸족(pet+family)’이 늘고 있다. 펫팸족은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대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기본적으로, 반려동물과의 긍정적 교류는 정신적 웰빙 수준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코르티솔, 심박수, 혈압 등 스트레스 관련 생리 지표들을 개선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엠브레인은 2024년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반려동물 관련 인식을 조사했다. 그 결과, 응답자 중 반려동물 양육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약 64%였다. 9년 전에 비해 약 10% 증가한 것이다. 응답자 중 약 85%는 반려동물에 대해 ‘가족만큼 가장 소중한 존재’라고 했고, 약 83%는 ‘그 어떤 친구보다 의미 있는 존재’라고 답했다. 또 응답자 중 약 85%는 반려동물이 죽는다면 극심한 우울감을 느끼게 될 것 같다고 응답했다. 특히, 20대 응답자 중 64%는 자녀를 낳지 않고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이 괜찮은 삶의 형태라고 답했다.

일부 펫팸족 사이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보다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 더 슬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미 우리 사회에는 ‘반려동물의 인간화’가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반려동물을 사람만큼 중요한 정서적 동반자로 여기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왜 이들은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보다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 더 슬프다고 말하는 것일까? 이는 행복한 관계의 비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행복한 관계의 핵심 요건 중 하나는 ‘무조건적이고 긍정적인 존중’이다. 흔히 부모는 자녀가 잘했을 때는 칭찬하고 잘못했을 때는 야단친다. 물론, 자녀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러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이를 심리학에서는 ‘조건적인 존중’이라고 한다. 부모의 가르침이 자녀에게 반항심을 불러일으키지 않고 실제로 효과를 나타내려면 무조건적이고 긍정적인 존중 경험이 그러한 가르침보다 선행돼야 한다.

매를 아끼면 아이가 버릇없어질 수 있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미국 하버드대의 성인 발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아동들은 자애로운 부모가 아니라 매를 들거나 자애롭지 못한 부모 밑에서 나온다. 무조건적이고 긍정적인 존중은 자녀의 문제 행동에 대해서 그저 내버려두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녀가 자신의 문제 행동에 대해 스스로 브레이크를 조금 더 힘차게 밟을 수 있도록 ‘사회적인 지지’를 더해 주는 것을 뜻한다.

반려동물은 곁에 있는 사람이 잘났건 못났건 그저 자신과 함께해 주는 사람을 좋아하고 따른다. 세상 사람들이 제아무리 자신을 차별하거나 비판해도 그것에 영향을 받지 않고 항상 자신을 긍정적으로 대해 주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은 행복한 관계의 출발점이 된다.

행복한 관계의 또 다른 비밀은 ‘받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자녀는 부모로부터 많은 것을 받는다. 하지만 이렇게 받는 것만으로는 관계에서 애정이 충분히 싹트지 않는다. 행복한 관계는 받는 동시에 그만큼 내어 주기도 할 때 비로소 탄생한다.

우리는 반려동물로부터 무조건적이고 긍정적인 존중을 받는 동시에 보호자로서 많은 보살핌을 준다. 일부 펫팸족이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보다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 더 슬프다고 말하게 되는 이유다. 행복한 관계의 비밀은 무조건적이고 긍정적인 존중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받는 것만큼 상대방에게도 되돌려주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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