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최고의 행복,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고영건의 행복 견문록]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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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건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
고영건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
영화 ‘시네마 천국’에는 유명한 사랑 이야기가 나온다. 훗날 영화감독이 되는 소년 토토가 아버지 같은 존재 알프레도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아주 먼 옛날 한 나라의 왕이 연회를 열면서 나라 안의 모든 미인들을 초대했다. 이때 왕의 호위 병사 중 하나가 공주를 보게 됐다. 그 병사의 눈에는 연회에 참석한 여인 중 공주가 가장 예뻤다. 이내 병사는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그 둘의 신분 차이가 너무나도 컸다.

어느 날 병사는 용기를 내 공주에게 공주가 없는 삶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고백했다. 그 말에 감동받은 공주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당신이 100일 밤낮을 내 방 발코니 아래에서 기다려 준다면, 기꺼이 당신과 결혼하겠어요.”

공주의 말을 들은 병사는 크게 기뻐하며 곧바로 공주의 방 발코니 아래로 달려갔다. 하루, 이틀, 그리고 스무날이 지나가는 동안 병사는 비가 오고 눈이 와도 그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공주는 병사의 그런 모습을 날마다 창문으로 내려다봤다. 90일이 지나자, 마침내 병사는 탈진했다. 잠을 잘 기운조차 없어 그저 누워서 눈물만 흘려야 하는 상태가 됐다. 공주는 안쓰러워하면서도 계속 병사를 지켜봤다. 하지만 99일째 되던 날 밤, 병사는 갑자기 일어나더니 말없이 멀리 떠나가 버렸다.

알프레도는 토토에게 여기까지 들려준 다음 이렇게 말했다. “병사가 떠난 이유는 나도 모르니, 묻지 마라. 나중에 네가 그 이유를 알게 되면, 내게도 가르쳐 주렴.”

훗날 청년이 된 토토는 운명의 엇갈림 속에서 실연의 아픔을 겪게 됐다. 상심 속에서 그는 알프레도에게 이제는 자신도 병사의 마음을 알 것 같다고 말한다. “아마 공주는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거예요.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거였어요. 병사가 못 오를 나무를 바라본 거죠. 하지만 그래도 병사는 99일 동안 행복한 꿈을 꾸면서 견딜 수 있었어요.”

공주와 병사 이야기는 프랑스 문학비평가 롤랑 바르트의 저서 ‘사랑의 단상’ 속 ‘기녀와 선비’ 이야기를 각색한 것이다. 사실 공주와 병사 혹은 기녀와 선비 이야기에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이는 99일간 공주를 애타게 기다렸던 병사가 스스로 떠나감으로써 평생 공주가 자신을 기다리도록 만들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랑의 심리학’에서는 사뭇 다른 해석을 한다. 사랑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랑받을 만한 행동을 하거나 쓸모 있는 행동을 하는 경우에만 사랑을 주고받는 ‘조건적인 사랑’이다. 나머지 하나는 사랑받을 만한 행동을 하지 않거나 오히려 사랑받지 못할 만한 행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주고받는 ‘무조건적인 사랑’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이다.

병사가 공주를 떠난 것은 99일째 되던 날 비로소 공주의 사랑이 조건적인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병사는 공주와의 관계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관계’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미련 없이 떠나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처럼 때로는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법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지상 최고의 행복은 우리가 현재 모습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받는다고 확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디, 세상의 모든 사람이 지상 최고의 행복, 즉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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