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산업 현장에서 불필요하게 업무효율을 떨어뜨리는 크고 작은 규제 54건을 찾아내 정부에 개선을 요청했다. 하나하나가 ‘이런 규제가 아직도 남아 있나’ 싶을 정도로 시대 변화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것들이다. 올해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 밑으로 떨어진 데에도 사회 구석구석에 박힌 시대착오적 규제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반도체 공장을 세울 때 밖에서 소방관이 깨고 들어갈 수 있도록 40m 간격으로 유리창을 내도록 한 규제는 산업의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창을 많이 만들수록 반도체 품질을 떨어뜨리는 먼지 유입의 가능성이 커진다. 2∼11층 건축물에 40m 간격의 진입창을 만들도록 한 일반 규제를 첨단 반도체 공장에 기계적으로 적용해 벌어진 일이다. 구호작업이 가능한 통로에 진입창을 설치하도록 허용해 달라는 기업들의 요청이 훨씬 합리적이다.
부설연구소를 둔 기업이 투자세액 공제 혜택을 받으려면 연구실 4개 면에 콘크리트 벽 등 고정벽체를 세워 독립공간을 보장해야 한다는 규제도 황당하다. 기업들은 연구인력을 재배치할 때마다 단단한 벽을 허물고, 세우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가변벽체를 쓴다면 비용, 시간을 크게 아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빠른 의사소통이 경쟁력인 기업 연구소에 칸막이를 의무화한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다.
서비스업 분야에도 낡은 규제가 넘쳐 난다. 미용사 여럿이 한 가게에서 동업할 때 각각 별도의 샴푸실, 펌기계를 두도록 한 공중위생관리법의 규제는 미용 산업의 진화를 가로막고 있다. 이런 규제가 없는 미국, 일본에선 여러 미용사들이 시설을 공유해 창업비용을 절약하는 ‘공유 미용실’이 인기다. 체내에 심는 칩 또는 외장형 인식표를 썼을 때만 동물을 등록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 이는 인공지능(AI)을 이용해 반려동물의 외모를 인식하는 첨단기술 발전을 발목 잡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전망한 올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1.9%로 현 정부가 목표치로 제시한 3%와는 차이가 크다. 기업 연구소의 인테리어조차 마음대로 바꾸지 못하게 하고, 청년 미용사의 창업방식까지 규제하는 나라에서 성장률 제고는 기대하기 어렵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