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버그는 해충일까 익충일까… 기준에 따라 달라지는 생명의 얼굴[강용수의 철학이 필요할 때]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7월 21일 2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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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버그 급증이 부른 해충 논쟁… 생태계 기여 vs 인간생활에 피해
슈바이처 “모든 생명체 가치 지녀”… 생명 해쳐야 할 땐 무게 인식해야
‘비현실적’ ‘해법 부족’ 비판에도 인간 중심 벗게 하는 관점 제시해

아프리카 가봉의 랑바레네에서 평생 의료 봉사를 한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의 모습. 그는 모든 생명체에 내재적 가치가 있다며 ‘생명에의 경외’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아프리카 가봉의 랑바레네에서 평생 의료 봉사를 한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의 모습. 그는 모든 생명체에 내재적 가치가 있다며 ‘생명에의 경외’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슈바이처의 ‘생명에의 경외’ 사상

최근 급증한 붉은등우단털파리(‘러브버그’) 때문에 많은 불편을 겪었다. 미국 남부에서 주로 발견되는 러브버그와 달리 이 털파리는 한국, 중국, 대만,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만 발견된다고 한다. 이 벌레가 인간에게 해로운지, 유익한지를 놓고 뜨거운 논쟁이 이어진다. 털파리는 최근 4, 5년 새 한국 생태계에 확산돼 익충이냐, 해충이냐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부족하다. 또 선과 악의 잣대가 인간이라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그 판단이 다를 수밖에 없다.》

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익충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이 곤충이 토양 분해를 도와 땅을 비옥하게 만들고, 수분을 매개하는 등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생태계를 교란하지 않고 이로운 역할을 한다는 이유로 환경단체는 털파리에 대한 인위적 방제에 반대하며 공생을 요구한다. 반면 해충이라고 보는 측에선 이 벌레가 생태계에서는 유용한 기능을 맡고 있더라도 인간의 실생활엔 피해를 준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떼 지어 날아다니며 차량을 뒤덮고, 옷이나 피부에 달라붙어 불편감을 준다. 자꾸 가게 안으로 들어와 영업에 지장을 주기도 한다.

7월 초 인천 계양구 계양산 정상 난간에 빼곡히 모여 있는 붉은등우단털파리(일명 ‘러브버그’).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7월 초 인천 계양구 계양산 정상 난간에 빼곡히 모여 있는 붉은등우단털파리(일명 ‘러브버그’).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지난해 6월 서울연구원이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6%는 이 털파리에 대해 ‘대량 발생해 시민에게 피해를 끼치니 해충’이라고 답했다. 생태계에서의 ‘좋음’이 인간에게의 ‘좋음’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고민했던 사상가로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가 있다. 조제프 데자르댕의 ‘환경윤리’에 따르면 슈바이처가 옹호하는 생명 중심 윤리는 모든 생명체가 내재적 가치를 가진다고 본다. 일생을 아프리카 오지에서 의료 봉사에 바친 슈바이처는 ‘생명에의 경외(reverence for life)’라는 개념을 통해 현대 생명 중심 윤리의 원조가 됐다.

슈바이처가 아프리카에서 머물던 어느 날이었다. 해질 무렵 강 상류로 바지선을 타고 올라가던 중 하마 떼를 봤다. 그때 그는 갑자기 ‘생명에의 경외’라는 말이 섬광같이 떠올랐다고 회고했다. 생명에의 경외는 슈바이처의 모국어인 독일어로 ‘Ehrfurcht vor dem Leben’인데, ‘Ehrfurcht’는 ‘존경(Ehre)’과 ‘두려움(Furcht)’의 합성어다. 다소 종교적 색채가 담긴 이 용어를 쓰면서 슈바이처는 생명 존중을 마음 깊이 새겼다.

슈바이처는 “나는 ‘살려고 애쓰는 생명체 중 살려고 애쓰는 생명체’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생명윤리는 바로 이러한 자각에서 출발한다. 자연 안에 선(善), 즉 내재적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이 윤리의 기초를 제시할 수 있다고 확신한 것이다.

우리는 다른 생명체 또한 인간처럼 살고자 애쓴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분명히 안다. 따라서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고 고양시키는 것이 선이고, 그 반대로 생명을 파괴하거나 해를 가하며 억압하는 것은 악이다. 생명 자체가 도덕적 가치를 결정하는 절대적이자 기본적인 원리가 된다. 슈바이처는 모든 생명체가 내재적 가치를 지니므로 우리는 이들을 존중하고 경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시각에서 보면 생명은 가치 중립적인 ‘사실’이 아니라, 그 자체로 반드시 존중받아야 할 ‘선’이다. 따라서 다른 생명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된다. 그는 질병을 옮기는 모기도 죽이지 않고 방 밖으로 내보낼 정도로 조심했으며, 생명을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살충제 디클로로디페닐트리클로로에탄(DDT) 사용에도 반대했다.

하지만 생명 경외의 윤리는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비난받기도 한다. 과연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의 생명이 인간의 생명만큼 소중하다고 할 수 있을까? 털파리의 생명이 인간과 같은 수준으로 존중받아야 하는가? 인간의 생명이 다른 생명, 예를 들면 인체의 면역 체계를 파괴하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같은 존재와 충돌할 때 해결할 원칙이 있을까?

실제로 슈바이처는 인간과 다른 생명체의 이익이 충돌하는 상황에 대한 해법을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 생명 존중과 생명 경외의 사상은 우리가 다른 생명을 죽여야만 살 수 있는, 인류가 진화를 통해 습득한 생존경쟁이나 적자생존의 논리에 맞지 않다. 가령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도 생명을 죽여야만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의사는 바이러스를 죽여야 하고, 도축업자는 돼지를 잡아야 하며, 농부는 나무를 잘라야 한다.

슈바이처는 죽일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모르는 게 아니었지만, 그러한 상황에선 일정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봤다. 어쩔 수 없이 생명을 해치는 행위를 할 때 그에 대한 채무의식을 느끼고, 이를 의식하는 상태에서 살생을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슈바이처의 생각은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소박하다는 이유로 대중과 철학자들로부터 큰 지지를 얻지 못했다.

그럼에도 슈바이처의 생명 중심 사상은 동물의 권리 보호 차원을 넘어, 인간 중심주의에 매몰된 우리에게 자연과 공존하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한다. 모든 생명을 인간과 같은 우주의 구성원으로 품으려는 발상이기 때문이다.

‘익충’과 ‘해충’의 구분 역시 인간이 자신을 기준으로 좋음과 나쁨을 덧씌운 판단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질서와 생명의 질서가 충돌할 때,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다른 생명을 해칠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진다.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른 생명체를 파괴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 희생에 대한 도덕적인 책임을 따지기는 결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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