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말했다 파도가 두려워지기 전까진 파도를 두려워하지 마라 세상이 무서워지기 전까진 세상을 무서워하지 마라 할머니의 뼛가루를 바다에 뿌린 뒤로 자주 바다로 나가 헤엄을 쳤다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추위와 더위를 가리지 않고 할머니가 남긴 말을 이해해보려고
(중략)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보다 죽은 자의 청력을 믿었다 하얗던 수영복이 더는 하얗지 않은 게 부끄럽지 않았다 마루 틈에 코를 박고 숨을 쉬면 할머니 몸 냄새가 났다
세상이 무서워지기 전까진 세상을 무서워하지 마라 사랑이 끝장나기 전까진 사랑을 끝장내지 마라 검은 암초에 부딪혀 뺨이 찢겨도 질긴 해초가 종아리를 휘감아도 두렵지가 않았다 세계를 곱게 빻은 빛 가루가 할머니라면 그것이 훨 훨 한줌처럼 가볍다면 도무지 세상이 무서워지지 않았다
―정다연(1993∼ )
할머니는 어디로 갔을까? 혼잣말할 때가 있다. “할머니는 10년도 전에 돌아가셨지 않느냐”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그 얘기가 아니거든요, 할머니는 사라졌지만 분명 존재하거든요”라고 우길 것 같다. 그런데 할머니, 어디에 있어? 어디에 숨었어? 밥을 먹다 세수를 하다 창밖을 보다 죽은 할머니를 찾는 일.
며칠 전 이 시를 읽는데 눈이 환해졌다. 할머니는 있다! 내 바다에서 윤슬로 빛나며, 빛으로 말을 거는 할머니가 보였다. 세상이 무서워지기 전까진 아무것도 무서워하지 말라고 내 이마를 쓸어주는 할머니를 ‘다시’ 찾았다. 시를 반복해 읽는데 마지막 연에서 비로소 눈물이 났다. 슬픔이 아닌 안도와 수긍의 눈물이다.
삶은 ‘사랑하는 죽은 이’로 가득 찬 바다에서 ‘빛 헤엄’을 치며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아닐까? 죽은 자는 온 세상에 있다. 우리 곁에, 내 모든 것에 있다. 겁이 날 때마다 ‘빛 가루’로 나타난 할머니를 떠올려보자. ‘도무지 세상이 무서워지지’ 않을 때까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