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도입한 생성형 인공지능(AI) 파일럿 프로그램의 불과 5%만 수백만 달러(수십억 원대)의 가치를 창출했을 뿐이다.” 매사추세츠공대(MIT) 산하 연구조직인 ‘NANDA 이니셔티브’가 18일 내놓은 ‘생성형 AI의 격차: 2025년 기업 내 AI 현황’ 보고서의 핵심 메시지다. 앞서 15일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인터뷰에서 “투자자들이 AI에 지나치게 흥분한 단계에 있다. 닷컴버블 때처럼 과열된 건 사실”이라고 말한 것과 보고서의 반향이 겹치면서 전 세계 금융시장이 갑자기 ‘AI 거품론(論)’의 깊은 불안 속으로 빠져들었다.
▷300개 이상 기업의 AI 사업 계획을 분석하고 기업 리더·경영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작성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400억 달러(약 56조 원)의 투자가 이뤄졌는데도, 95%의 기업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오픈AI의 챗GPT, 마이크로소프트의 코파일럿 등 생성형 AI를 업무에 도입했더니 직원들의 업무편의 개선, 생산성 강화에 일부 효과가 있었지만, 기업의 매출 상승, 수익 창출로 거의 연결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투자자들이 얼어붙은 건 닷컴버블 붕괴의 트라우마가 크기 때문이다. 1990년대 말 세계의 투자자들은 이름에 ‘인터넷’, ‘닷컴’이 포함된 기업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돈을 쏟아부었다. 이 중 대다수가 이익을 못 내는 쭉정이란 사실이 확인되면서 2000년 증시가 폭락해 5조 달러(약 7000조 원)가 증발했다. 이번 달 선보인 오픈AI의 ‘GPT 5’가 인간의 모든 지적 작업을 대신할 수 있는 ‘범용인공지능(AGI)’과 거리가 멀다는 실망감도 거품론에 한몫했다.
▷물론 낙담하긴 이르다는 반론이 많다. 투자자 돈만 스펀지처럼 빨아들인 뒤 아무 성과를 못 내고 사라져간 닷컴기업들과 달리 챗GPT 등은 정기구독 등으로 이미 많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는 게 근거다. 기업가치 고평가 논란으로 최근 주가가 폭락한 미국 AI 방산기업 팔란티어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실력을 입증했다. 중국에서 일반인 대상으로 판매되기 시작한 휴머노이드 로봇, 미국 테슬라의 자율주행차도 두뇌 역할을 하는 AI 없인 돌아가지 않는다.
▷닷컴버블을 겪은 세대라면 지금 우후죽순처럼 등장하는 AI 모델과 기업 대다수가 십수 년 뒤 일반인의 기억에서 깨끗이 지워질 것이란 걸 경험적으로 안다. 단지 어느 AI가 끝까지 살아남아 정보기술(IT)계의 구글 같은 존재가 될지, 그때 한국인들이 우리 정체성이 담긴 ‘소버린 AI’를 쓰고 있을지 예측하기 어려울 뿐이다. 그런 날이 올 때까지 투자자들은 수없이 많은 AI 버블론의 고달픈 고개를 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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