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집무실인 백악관 ‘오벌 오피스’는 트럼프 취임 후 외국 정상들에게 부담스러운 무대가 됐다. 그곳에서 트럼프는 상대국 정상을 옆에 앉혀놓고 일장 훈계를 하거나 면박 주는 걸 마다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TV로 중계되는 가운데 그런 ‘봉변’을 당했다. 그래서 미국 방문을 앞둔 정상들로선 트럼프 다루는 법을 예습하지 않을 수 없다. ‘압박에 말려들지 말라’ ‘원하는 선물을 안겨라’ ‘칭찬은 기본, 필요하면 아부하라’는 게 핵심 내용이다.
▷백악관을 찾은 해외 정상은 오벌 오피스에 가기 전 바로 옆 ‘캐비닛 룸’에 먼저 들러 방명록을 쓴다. 이재명 대통령도 25일 한미 정상회담 때 이곳에 들렀다. 이 대통령이 방명록 쓰는 동안 트럼프가 뒤에서 유심히 바라본 물건이 있었다. 한국 장인이 두 달간 원목을 깎아 만든 이 대통령의 만년필이었다. “펜이 멋지다. 그거 도로 가져갈 건가”라며 관심을 보이자 이 대통령은 즉석에서 선물하며 “평소 하시는 어려운 서명에 유용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의 서명은 ‘지진계 그래프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크고 길고 복잡하다.
▷이 대통령이 애초에 챙겨 간 선물은 금빛 거북선이었다. 국내 최대 조선사인 HD현대의 기계조립 명장이 만든 모형이다. 한국의 조선 기술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마스가(미국의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의 성공을 기원한다는 뜻을 담았다. ‘골프광’ 트럼프를 위해 그의 체격과 퍼팅 자세를 연구해 골프 퍼터도 만들어 갔다. 트럼프 이름과 함께 대통령 역임 차수인 45, 47도 새겨 넣었다.
▷회담에선 트럼프 맞춤형 칭찬 공세가 이어졌다. 이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이 ‘피스메이커’를 하면, 저는 ‘페이스메이커’로 열심히 지원하겠다”고 하자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간 트럼프에게 노벨 평화상 수상을 언급하며 환심을 사려 한 정상들은 많았다. 이 대통령은 막연한 립서비스 대신, 노벨 평화상 수상의 관건이 될 수 있는 북핵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행사할 것을 청한 것이다. 트럼프는 “이 대통령은 정말 훌륭한 지도자다. 미국의 전적인 지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화답했다.
▷상대가 원하는 걸 주고 내가 원하는 걸 얻어내는 게 외교라면 선물과 칭찬은 아낄 일이 아니다. ‘선물 외교’는 각국이 소프트파워를 과시할 기회이기도 하다. 트럼프가 집무실에서 정상들을 만날 때마다 자랑한다는 ‘결단의 책상(Resolute Desk)’은 1880년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당시 미 대통령에게 선물한 것이다. 일본이 100여 년 전 선물로 가져온 벚꽃 나무는 지금도 워싱턴의 봄을 수놓는다. 요즘처럼 관세 협상으로 거센 파도가 치는 때라면 트럼프의 마음을 정확히 읽은 선물이야말로 가장 가성비가 높은 외교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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