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우경임]‘트럼프 쇼’ 무대된 조지아주 한국 공장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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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경임 논설위원
우경임 논설위원
미국 조지아주 친(親)트럼프 정치인 토리 브래넘은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공장을 자신이 이민세관단속국(ICE)에 신고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공장은 우리에게 자산이 아닌 부담”이라고 했다. 극우 성향을 가진 ‘관종’ 정치인의 말이라고 폄하할 수만은 없다. 미국인은 고용하지 않으면서 우물을 마르게 하고 세금 면제까지 받는 한국 공장에 대한 백인 저소득 노동자의 반감을 그대로 전달했기 때문이다. 조지아주 한국 공장은 어쩌다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표적이 된 것일까.

불법 고용-안전사고 증거 모은 노조

미국 국토안보수사국(HSI)은 이번 단속이 수개월간 수사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꼭 6개월 전인 올해 3월 CBS 계열 조지아주 서배너 지역 방송인 WTOC는 현대차 메가 사이트에 대해 보도했다. 이번에 단속된 배터리 공장과 앞서 완공돼 가동을 시작한 전기차 공장 부지다. 현지 업체를 쓰지 않는다는 지역 건설 노조의 주장을 그대로 전달했다. 5월에는 배터리 공장의 안전사고도 다뤘다. 이번 단속은 친트럼프 정치인 1명의 제보가 직접적인 발단이 된 것이 아니다. 지역 노조와 방송 등이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했던 것이다.

이번에 구금됐던 한국인은 대부분 전기 설비 관련 인력이다. 배터리 공장이 없는 미국에선 구하려야 구할 수 없는 숙련공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일할 수 있는 비자가 나오지 않았다. 트럼프 정부 들어 전문직 취업비자(H-1B), 주재원(L) 비자, 투자사 직원(E2) 비자 받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고 하청업체들은 사실상 자격을 갖추기가 쉽지 않다. 단기 상용(B1) 비자조차 한꺼번에 직원 수십 명이 거절당한 경우도 있었다. 공장을 세워야 일자리를 만들 텐데 투자는 하라면서 비자는 틀어막았다. 미국이 뒤늦게 구금된 인력이 남아 미국인을 훈련하라고 권한 건 이런 사정을 파악해서일 것이다.

중간선거 최대 접전지에서 벌어진 쇼

우리 기업이 빌미를 줬다 하더라도 ICE, HSI, 연방수사국(FBI), 마약단속국(DEA), 국세청(IRS)까지 연방 및 주 정부 10개 기관에서 400명 넘게 투입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과연 트럼프 대통령은 그의 말대로 그 사건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을까.

내년 중간선거에서 조지아주는 최대 접전지로 꼽힌다. 현직 주지사는 공화당 소속, 상원 의원 2명은 모두 민주당 소속이다. 공화당 텃밭이었던 조지아주는 이민자가 늘며 선거마다 민주당과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지아주를 사수해야 상원을 장악할 수 있고, 비(非)트럼프계인 브라이언 캠프 주지사 교체까지 바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캠프 주지사의 업적이자 지역 노조의 표적이 된 현대차 공장을 급습했고 전 세계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현지에서 트럼프의 최대 지지 세력인 백인 노동자 결집을 기대하고 철저히 기획된 쇼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조지아주 바닥 민심을 읽은 민주당 의원까지 이번 단속의 무도함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한국 공장 단속은 ‘마가’라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미국 정치가 어디로 내달릴지 모른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해 줬다. HSI는 “조지아주 주민과 미국인의 일자리를 보호하겠다”며 불법 고용에 대한 수사를 계속하겠다고 했다. 기업들은 ‘관세 리스크’를 피하려다 ‘마가 리스크’를 마주한 셈이다. 숨을 고르고 대미 투자의 손익을 냉정히 따져 봐야 할 것이다. 정부도 당장 317명의 구금 한국인이 풀려난 것을 두고 “양 정상의 신뢰 관계가 쌓이고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포장할 때가 아니다. 이번 단속 결정 과정을 들여다보고 향후 파장에 단단히 대비해야 한다.

#미국#조지아주#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불법고용#트럼프#이민세관단속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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