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웅 연극연출가명문장 아니고 명대사다. 드라마 ‘삼국지’에서 조조가 죽을 때 이 대사를 쳤다. 드라마 분량이 총 90회가 넘는데 캐스팅과 서사가 괜찮아서 쭉 몰아 봤다. 특히 조조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조조는 처음부터 영 못됐다. 호의를 베풀어 술을 사러 간 사이 하인들이 돼지를 잡는 것을 자신을 죽이려는 것으로 착각해 죄 죽인다. 도망치던 길에 술 사러 간 은인도 죽여 없앤다. 드라마는 시종 그 인간의 권모술수와 야심, 생존을 위한 꼼수와 고뇌를 극적으로 그려낸다. 그러다 죽는다. 여지없이 죽는다.
사실 조조가 죽을 때 그럴싸한 명대사를 기대했지만 그렇지는 못했다. 죽음은 시원한 여름밤, 편히 잠들게 해주니까. 그 밋밋한 문장에 섭섭함이 느껴지려던 찰나, 땡볕 아래 악착같이 버티던 조조의 고단한 삶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에어컨 바람 한 조각 없이 스트레스로 점철돼 오로지 지독한 사막의 한여름 같았던 그의 생애가.
삶의 대척에 죽음이 있다. 그 죽음의 순간 시원한 여름밤이라니, 나름 안식을 찾고 싶은 욕심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끝내 집착을 다 내려놓지는 못했다. 천하를 누비며 군웅을 제압하고 살인을 아무렇게나 하고 살았으니 후환이 두렵기도 했을 터. 아니나 다를까, 도굴을 피하려고 70개가 넘는 짝퉁 무덤을 만들라고 했다나. 죽고 난 다음에 무슨 의미랴만 그래도 시원한 여름밤에 꿈도 꾸지 않을 긴 잠으로 들어갈 기대는 하고 싶었나 보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아다녔단다. 얼마 전 어떤 나라의 살벌한 군주들께서 나누시던 대화가 들켜 입방아에 올랐다. 줄기세포와 영원불멸에 꽤 관심이 가셨던 듯. 그 시원한 여름밤을 정녕 포기하고 싶은 걸까. 굳이 뙤약볕에서 더 오래오래 진땀을 내겠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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