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유성열]국민의힘을 휘감는 광장과 종교의 유혹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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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열 정치부 차장
유성열 정치부 차장
‘조국 사태’가 정국을 뒤흔들던 2019년 가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은 광장으로 나갔다. 황교안 당시 대표는 제1야당 대표로선 처음으로 삭발을 감행했고, 청와대 앞에 천막을 치고 단식 투쟁을 이어갔다. 매주 광화문에서 ‘문재인 퇴진’을 외치던 태극기 부대도 자유한국당 집회에 적극 호응했다. 진보의 전유물이라 여겼던 광장에 연일 수만 명이 모이자 보수 진영은 전에 없던 기대감에 부풀었고, 현역 의원 상당수가 집회에 나가 색깔론으로 군중을 자극했다.

그해 12월 16일 공수처법·선거법 날치기 저지 규탄대회에 참여했던 일부 시위대가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난입해 의원들을 폭행하고 난장판을 벌이는 사태도 벌어졌다. 황 전 대표는 “여러분 들어오신 거 이미 승리하신 것”이라며 “자유가 이긴다”고 소리쳤다. 국회의장이던 “문희상을 처단하자”는 구호까지 등장했다. ‘광장의 힘’을 확인한 자유한국당은 보수 대통합을 명분으로 바른미래당을 끌어안으며 미래통합당으로 당명을 바꾸고 21대 총선의 필승을 다짐했다. 그러나 103석에 그쳤다. 보수 정당 역사상 최악의 참패였다.

국민의힘은 21일 동대구역 광장에서 ‘야당탄압·독재정치 국민 규탄대회’를 열었다. 2020년 1월 이후 5년 8개월 만에 다시 광장으로 나간 것이다. 당 자체 추산 결과 7만 명이 모였다고 한다. “이재명을 끌어내자” “이재명 당선 무효” 구호가 이어졌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이름을 연호하는 군중도 적지 않았다. 집회 열기에 고무된 지도부는 27일 서울역에서 대규모 집회를 또 열기로 했다.

광장을 다시 찾은 국민의힘에서 2019년의 데자뷔가 느껴진다. 당장 당내에서조차 당 지지율이 20%대로 추락한 상황에서 집회의 명분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장파 김재섭 의원은 그래서 집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는 “국민의 불신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의 장외 투쟁은 실효성이 없다”며 “장기화되면 ‘황교안 시즌2’가 된다”고 꼬집었다.

국민의힘이 더 걱정인 건 종교까지 그들을 휘감고 있다는 것이다. 통일교원 당원 가입 의혹은 특검 수사가 진행될수록 국민의힘의 목을 옥죄고 있다. 당원 명부까지 특검이 가져갔지만, 당 지도부는 특검 수사가 잘못됐고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만 반복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권성동 의원과 한학자 총재는 구속됐고 특검은 수사를 더 확대하고 있다.

국민의힘이 특정 종교와 밀착하고 있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알려진 장동혁 대표는 올 3월 개신교 단체 집회에 나가 “계엄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고 했다. 22일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을 만나서는 합장을 하지 않아 불필요한 논란을 일으켰다. 역시 기독교인인 황교안 전 대표도 부처님오신날 법요식에서 합장을 하지 않은 데 이어 조계종에 설 선물로 육포를 보내 불교계의 강한 반발을 샀다.

정당에 광장과 종교는 무척 솔깃하다. 신념과 믿음으로 뭉친 광장과 종교의 힘을 그 안에서 느끼면 쉽게 압도당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광장의 군중과 종교는 국민의 일부일 뿐 전체는 아니다. 정권 획득을 목표로 하는 대의민주주의 정당이라면 광장과 종교의 솔깃한 유혹에서 말끔히 벗어나야 한다. 제1야당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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