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1일(현지 시간) 미국의 상호관세 발효를 앞두고 정부가 미국산 쌀 수입 확대와 조선·반도체 분야 추가 투자 등을 협상 카드로 상호관세와 자동차 관세 인하를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미국산 쌀 수입 비중을 늘리고 대규모 대미(對美) 투자(5500억 달러)로 관세 인하를 끌어낸 미일 합의를 참고해 농축산물 시장 개방 타격을 최소화하면서도 미국이 관심을 보여 온 전략 산업 협력으로 투자 효과를 극대화할 방침이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소고기 시장 개방 압박을 지속하고 있는 데다 일본에 준하는 대규모 대미 투자를 요구하고 있는 만큼 남은 협상에서 한미 간 간극을 얼마나 좁히느냐가 관세 협상의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왼쪽)과 김용범 정책실장이 25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청사에서 비서실장 주재 통상대책회의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5.7.25/뉴스1정부는 지난주 한미 고위급 협의 이후 미국의 농산물 시장 개방 요구에 일부 양보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협상카드에서 제외했던 30개월령 이상 소고기 수입이나 쌀 시장 개방 중 일부를 협상 카드에 포함시키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
이에 따라 정부는 미국산 쌀 수입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수입 쌀에 대해 513%의 관세를 적용하고 있으나 저율관세할당물량(TQR) 40만8700t에 대해선 5%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현재 저율관세(5%)를 부과하고 있는 쌀의 30%가량이 미국산이다. 일본은 무관세로 수입하는 외국산 쌀 수입 쿼터를 77만 t으로 유지하면서 미국산 수입 비율(45% 수준)을 확대하기로 미국과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가 미국산 쌀 수입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따라 저율관세가 적용되는 전체 수입 쌀 규모를 늘리거나 국가별 쿼터 중 미국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 글로벌 쿼터를 미국에 주는 방안도 있지만 최대 규모가 2만 t에 그친다.
26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이 소유한 스코틀랜드 턴베리의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7일 현지에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을 만나 무역협상 담판에 나섰다. 턴베리=AP 뉴시스정부는 또 미국의 관심이 집중된 조선·반도체 분야에서 투자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까지 준비된 대미 투자 규모는 기업과 정부 보증을 합해 약 2000억 달러(약 276조 원)로 알려졌다.
미국 필리조선소처럼 현지 조선소를 국내 기업들이 추가로 인수하거나 독(dock) 등 조선소 설비를 확장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미국 내 조선소를 인수하는 방안에 대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놓고 얘기하고 있다”면서 “(협상 카드로)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정부는 MRO(유지·보수·운영)를 비롯해 현지 선박 건조와 기술 이전, 인력 양성 등 미국이 요청해 온 조선 협력 방안을 협상카드로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은 “미 측의 조선 분야에 대한 높은 관심을 확인했다”며 “양국 간 조선 협력을 포함한 상호 합의 가능한 방안을 만들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반도체 분야에서도 인공지능(AI)용 첨단 반도체 협력이 검토되고 있다. 미국의 수요가 큰 고대역폭메모리(HBM) 등이 사실상 국내에서만 생산되고 있는 만큼 설비 혹은 신규 공장 투자 등이 대미 투자 카드로 거론된다.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 미국산 소고기 코너의 모습. 2025.07.23.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정부는 25% 상호관세를 비롯해 품목별 관세 중 자동차 관세(25%)를 일본(15%) 수준으로 인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품목별 관세 중 50% 관세가 부과된 철강·알루미늄은 특정 국가에 관세를 면제해주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소고기 시장 개방 요구에서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은 2019년 30개월령 수입 제한을 없앤 일본과 최근 23년 만에 소고기 시장을 개방한 호주 사례를 거론하며 한국의 소고기 월령 제한 해제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특히 관세 협상의 최종 결정권을 가진 트럼프 대통령이 소고기 시장 비관세장벽을 지렛대로 대미 투자 규모를 증액하려 할 수 있다는 점도 변수로 꼽힌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비슷하다는 점을 들어 정부에 일본과 비슷한 수준의 대미 투자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관세 전쟁의 목적이 무역수지 개선에 있는 만큼 지금 정부가 마련한 투자 규모보다 더 큰 규모를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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