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 ‘사회적 비용’, 필수-지역의료 해법 ‘촉매’ 삼아야[기자의 눈/박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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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민·정책사회부
박경민·정책사회부
“우리가 패자다.”

기자가 만난 정부와 의대 교수, 전문의,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등 취재원들은 하나같이 이번 의정 갈등에서 졌다고 했다. 의대 증원 실무를 담당했던 보건복지부 공무원은 물론이고 의료 현장을 떠나지 않고 환자를 맡았던 의대 교수들이나 1년 7개월 동안 병원을 이탈했다가 이달 초 돌아온 전공의도 “의정 갈등으로 얻은 게 없다”고 했다.

한국 사회는 의대 증원 문제를 두고 막대한 비용을 지불했다. 의료 공백으로 3조 원 이상 건강보험 재정이 비상진료체계 유지에 투입됐다. 진료와 수술 지연으로 환자 피해와 불안이 가중됐다.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병원과 학교에 돌아오기까지 미래 의료인력 양성도 늦춰졌다. 의료계 관계자는 “소아응급 분야는 정상화까지 20년이 걸릴 것”이라며 “필수의료를 지탱하던 의사들이 정책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고 말했다.

의료계는 2026학년도 의대 증원 인원을 ‘0명’으로 되돌리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더 큰 손해를 입었다. 지난해 8월에는 의료계가 강하게 반대한 진료지원(PA) 간호사 제도가 담긴 간호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최근에는 비의료인 문신 시술을 허용하는 ‘문신사법’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넘었다. 의사가 독점하던 분야에 다른 직종의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다. 공공의대 설립, 지역의사제 도입 등 의료계가 반대한 정책도 추진되고 있다. 의료계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낮아진 상황에서 의사들이 이제까지의 방식으로 반대했을 때 국민 공감을 얻을지는 미지수다.

반면 이번 사태로 얻은 것도 있다. 의대 정원 문제로 유사한 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합리적인 의대 정원 추계를 위한 의료인력수급추계위원회가 설치됐다.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등 꼭 필요하지만 지원자가 적은 진료과목에 대한 정책 지원이 활발하게 논의됐다. 젊은 의사의 처우, 노동권 등 지속 가능한 수련체계에 대한 논의도 테이블에 올려졌다.

승패의 관점에서는 정부와 의료계 모두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패자’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번 의정 갈등은 장기적으로 의료인력 수급과 수련 환경, 필수의료 등을 개선하는 ‘불편한 촉매’가 될 수 있다. 정부와 의료계가 갈등하며 취약성을 드러냈지만 많은 사람이 함께 논의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기도 했다. 이제는 의정 갈등을 넘어 모두 함께 나서야 한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위한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다시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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