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동네의원서 ‘정신과 치료’ 권고, 10명중 1명만 따랐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2일 17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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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동네의원 마음건강 돌봄 연계’ 시범사업
우울증-자살 위험 감지해도 강제성 없어 한계

정부가 자살 위험 등 정신건강 위험군을 선별해 정신건강의학과 등 전문기관에서 의료 서비스를 받도록 하는 ‘동네의원 마음건강돌봄 연계 시범사업’을 3년 이상 진행했지만, 고위험군 환자 10명 중 1명만이 치료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치료 강제성이 없고 정신 치료 등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에 고위험군 환자들이 병원을 찾지 않았다.

● 정신 고위험군 10명 중 9명 치료 안 받아

2일 동네의원 마음건강돌봄 연계 시범사업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2년 3월부터 올 4월까지 약 3년여 동안 부산 지역 동네 의원에서 우울증이나 자살 위험성으로 정신건강 개입이 필요하다고 판단을 받은 고위험군 환자는 507명이었다. 하지만 이들 중 54명(10.7%)만이 보건복지부 ‘동네의원 마음건강돌봄 연계 사업’을 통해 정신건강의학과 병의원에서 치료받았다. 나머지 453명(89.3%)은 치료 자체에 동의하지 않거나 치료를 받겠다고 밝혔으나 실제 병의원을 방문하지 않았다.

정신 질환은 복통, 요통 등 신체 증상으로 먼저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내과 등 다른 진료과목 의원을 찾은 환자 중 정신적으로 위기 상황에 놓인 환자를 찾아 사전에 치료받도록 연계해 준다. 2022년 3월 부산에 시범사업으로 처음 도입돼 관련 상담 4362건이 진행됐다.

하지만 고위험군 환자가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을 방문하지 않으면 정신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강제성이 없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는 환자 의료정보에 접근할 권한이 없어 관련 복지서비스도 제공할 수 없다. 치료를 거부하는 고위험군 환자는 진료 의원이 담당하지만 제대로 관리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시 관계자는 “고위험군이 병원을 방문할 때마다 환자 상태를 살피고 필요하면 치료하라고 권고한다”면서도 “환자가 거부감을 보이며 동네 의원조차 방문하는 것을 꺼릴 때가 많다”고 말했다.

● 정신건강의학과 문턱 낮춰야

전문가들은 정신건강의학과의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권준수 한양대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국내 정신건강 전문기관은 중증 정신질환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위기 전 단계인 고위험군은 선뜻 방문하기 어려운 구조”라며 “고위험군과 만성질환자를 다루는 기관을 분리해 낙인 효과를 줄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호주는 중증 정신질환자 관리와는 별도로 정신건강 고위험군 등을 관리하는 성인 정신건강 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내과 등 동네 의원이 적극적으로 해당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인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환자 상담, 고위험군 발굴 등을 합쳐 수가로 5만200원(건강보험으로 지급하는 진료비)이 책정됐지만, 업무 난도에 비해 보상이 적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시범사업에 참여했던 275개 의원 중 33개 의원이 참여를 철회했다. 나머지 242개 참여 의원 중에서 실제 상담 등을 진행한 의원은 47개(19.4%)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김동욱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장은 “동네 의원이 사업에 참여해야 할 이유를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복지부는 시범사업 기간을 내년 3월까지 연장하고 다른 지자체로 사업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지자체 대부분은 참여에 소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자체 참여를 독려하고 시범사업 평가연구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신건강#고위험군#정신질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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