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선포문 받았다” 말바꾼 한덕수, 내란방조 ‘자충수’ 될수도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8월 22일 20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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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22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 마련된 내란특검 사무실로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2025.08.22. 서울=뉴시스

내란 특검(특별검사 조은석)이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 대해 구속영장 청구 방침을 세운 건 한 전 총리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불법 비상계엄이 적법해보이도록 외관을 만드는 모든 과정에 관여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 전 총리가 비상계엄 선포 당일 국무회의 소집을 건의한 것부터 ‘형식상’ 국무회의 개최, 사후 계엄선포문 작성 및 폐기 과정에 모두 관여했다는 게 특검의 시각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부터 줄곧 “비상계엄 선포문을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기억이 없다”고 진술했던 한 전 총리가 최근 특검 조사에서 “선포문을 받았다”고 진술을 바꾼 게 오히려 한 전 총리에겐 내란방조 혐의가 성립되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특검 “韓, 계엄 적법성 만들려 해”

특검은 한 전 총리가 지난해 12월 3일 오후 8시경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선포 계획을 전달받은 뒤 “국무회의를 열어야 한다”고 건의했다고 보고 있다. 계엄 선포 직전 대통령실엔 한 전 총리를 포함해 이상민 행정안전부, 박성재 법무부, 김영호 통일부, 조태열 외교부 전 장관 등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윤 전 대통령은 국무회의 참석 대상자 중 이들을 제외한 13명 중 6명만 불렀다고 한다. 6명 중에서도 박상우 국토교통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전 장관이 도착하기도 전에 국무회의 정족수인 11명이 채워지자 회의를 열었고 5분 남짓 만에 회의를 끝냈다.

특검은 한 전 총리가 윤 전 대통령에게 국무회의 소집을 건의한 건 비상계엄을 반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적법한 모양새를 갖추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전 총리가 윤 전 대통령이 선별한 일부 장관 외에 나머지 장관에겐 아예 연락을 취하지 않았고, 국무회의에 도착하지 못한 장관 2명을 기다려야 한다고 반대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특검은 한 전 총리가 계엄 해제 이틀 뒤 강의구 전 대통령비서실 부속실장이 들고온 ‘비상계엄 선포문’이라는 문건에 서명한 것도 주목하고 있다. 강 전 실장이 상급자인 한 전 총리 서명을 먼저 받고 하급자인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서명을 받는 등 결재 순서가 통상적이지 않았는데도 한 전 총리가 서명했다가 김 전 장관이 체포된 뒤에야 폐기하자고 했다는 것이다.

특검은 ‘국정 2인자’인 한 전 총리가 대통령의 국가 긴급권 남용을 제어할 ‘브레이크’ 역할을 할 헌법상 책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1948년 정부 구조를 처음으로 규정한 제헌헌법 초안을 작성했던 유진오 전 법제처장이 “대통령의 독주를 막기 위해 국회 승인을 거쳐 총리를 임명하도록 했다”고 밝힌 내용 등이 판단 근거가 된 것으로 전해졌다. 전시·비상사태가 아닌 상황에서 시도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불법이라는 사실이 명확한데도 한 전 총리가 이를 견제할 책무를 저버려 내란 범행을 도왔다는 논리다.

● 총리 출신 첫 구속 수사 기로

특검은 한 전 총리가 비상계엄 선포문과 관련한 기존 진술을 뒤집은 것에 대해 “혐의를 시인한 것으로 볼 수 있을지 모호하다”며 “전체 범죄에 대해 자백한다고 하면 증거인멸 가능성이 낮겠지만 일부만 시인한 경위 등을 볼 때 이를 시인이라고 볼 수 있는지도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여전히 한 전 총리가 내란방조 혐의는 부인하고 있다는 취지다.

특검은 한 전 총리에 대한 조사가 끝나는 대로 이르면 주말 중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앞서 한명숙 이완구 전 총리 등도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 혐의로 수사를 받았지만 모두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에 넘겨졌다. 한명숙 전 총리는 2009년 검찰 출석 요구에 두 차례 불응하면서 체포돼 조사를 받았지만 검찰은 정치자금법위반 혐의 양형 기준 등을 감안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았다. 다만 한 전 총리는 유죄가 확정될 경우 중형이 선고될 수 있는 내란방조 혐의를 받고 있어 정치자금법위반 혐의를 받던 전직 총리들과는 차이가 있다.

#한덕수#선포문#계엄#내란방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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