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40대 남성이 편의점에 들어서더니 술을 집어 들었다. 그는 계산을 마치자마자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음주 상태로 운전하는 것을 본 시민이 신고하자 ‘술타기’ 수법으로 단속을 피하려 한 것이다. 올 6월 22일 경북 구미시에서 벌어진 일이다.
예전 같으면 이런 경우 ‘운전대를 잡을 때부터 이미 취한 상태였다’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아 처벌을 피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경찰은 편의점 폐쇄회로(CC)TV 등을 확보해 추궁한 덕에 이 남성의 음주운전 혐의뿐 아니라 술타기 혐의로도 입건할 수 있었다.
도로교통법상 술타기 처벌 조항은 6월 4일 시행됐다. 음주운전 후 일부러 술을 더 마셔 측정을 방해할 경우 1년 이상 5년 이하 징역이나 500만 원 이상 2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내용이다. 지난해 5월 음주 사고를 낸 트로트 가수 김호중 씨가 술타기 수법을 쓰는 바람에 검찰은 그를 음주운전이 아닌 위험운전 등 혐의로만 기소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른바 ‘김호중 방지법’이 도입됐다.
하지만 법 시행 100일을 맞은 지금, 이 조항이 적용된 사례는 극히 드문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9월 11일까지 음주 측정 방해 혐의로 입건된 건수는 전국에서 22건에 불과했다. 연간 음주운전 적발이 13만 건을 넘어서는 현실을 감안하면 ‘빙산의 일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적발 건수가 적은 이유는 법 조항의 특수성 때문이다. 김호중 방지법은 ‘술에 취한 상태에 있다고 인정할 만한 사람’이 ‘측정을 곤란하게 할 목적’으로 추가 음주를 했다는 걸 전제로 한다. 수사기관이 피의자의 상태와 의도를 모두 입증해야 하는데, 이는 본질적으로 어려운 과제라고 경찰은 하소연한다. 한 경찰 관계자는 “카드 사용 명세와 CCTV를 확보해 행적을 추적한다 해도 ‘단순 음주인지, 측정을 방해하려는 음주인지’를 가려내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경찰이 사고 당시 음주측정 결과가 없을 때 보조적으로 활용하는 위드마크 공식도 불완전하다. 음주량, 체중, 성별 등을 토대로 운전 당시 혈중알코올농도를 역산하는 방식인데, 같은 양의 술을 마셔도 개인차가 크다는 이유로 법정에서 증거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적발은 됐지만 입건이나 처벌로 이어지지 못하는 사례가 누적되는 이유다.
해외에서는 입증 책임을 달리 두는 방식을 적용한다. 싱가포르는 음주운전자가 ‘사후 음주’를 주장할 수는 있지만, 이를 스스로 입증하지 못하면 그대로 처벌을 받는다. 노르웨이도 운전 종료 후 6시간 동안 음주를 금지하는 규정을 법에 명시해 사후 음주 자체를 원천 차단한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음주운전 재범자에게는 알코올 감지 시동잠금장치를 의무화하거나, 사고 후 도주 시 더 무거운 처벌을 부과하는 등 술타기 수법을 근본적으로 막을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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