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보건소(보건지소 포함) 7곳 중 1곳은 의사와 간호사가 모두 상근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재명 정부가 국정과제로 지역·필수·공공의료 강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농어촌에서는 지금 있는 공공 의료기관조차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상근 의사, 간호사가 없는 보건소는 공중보건의사(공보의)가 순회 진료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상근 의료진이 없는 건 민간 병원과 비교할 때 급여 수준, 대우가 낮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설 확충, 인력 양성도 중요하지만 공공의료의 시작이자 최후 보루인 보건소 관리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보건복지부가 한지아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2024년 하반기 보건소 및 보건지소별 의료인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전국 보건소 1598곳 중 241곳(15.1%)에서 의사(한의사, 치과의사 제외)와 간호사가 모두 근무하지 않았다. 이곳들은 모두 보건지소로 대부분 의료 환경이 취약한 농어촌에 집중돼 있다.
의사, 간호사가 모두 상근하지 않는 보건소 비율이 높은 지역은 전북(28.1%), 경남(21.1%), 경기(17.8%) 순이었다. 의료 인력이 없으면 진료는 물론이고 평소 주민 건강관리도 쉽지 않다.
고질적인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의료진 급여 현실화 등과 함께 민간 의료기관이 잘 운영되고 있는 지역에서는 보건지소 등을 통폐합하고 재편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역별 여건과 특성에 따라 새로운 역할과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개편 방안을 마련해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소 간호사 1명이 주민 2101명 건강관리도”
보건소 7곳중 1곳, 의사-간호사 없어 순회진료 의사는 한달 4일만 근무… 거동 불편해도 먼거리 병원 찾아 “민간의료 사각지대 위주 인력 배치… 찾아가는 진료 방식으로 재편을”
6일 전북 김제시 봉남보건지소 처치실에 불이 꺼진 채 인기척이 들리지 않고 있다. 봉남보건지소에는 상근하는 의사가 없어 공중보건의사가 월 4차례 순회 진료한다. 김제=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보건지소에 의사 선생님이 매일 오는 게 아니니까…. 좀 멀더라도 시내 병원으로 가는 게 마음이 편해요.”
5일 전북 김제시 봉남보건지소는 적막만 흘렀다. 무릎이 아파 거동이 어려운 주민 정모 씨(80)는 걸어서 10분 거리 보건지소 대신 1시간에 한 대 간격의 버스로 20분을 가야 하는 김제 시내 정형외과에 1주일에 한 번씩 방문해 물리치료와 약 처방을 받는다.
정 씨가 먼 시내까지 가는 이유는 지소에서 의사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날이 한 달에 네 번뿐이기 때문이다. 이달에는 7, 17, 21, 24일만 가능하다. 보건소·지소에서 근무하는 의사가 부족해 공중보건의사(공보의)가 순회 진료를 한다. 봉남보건지소에는 치과 공보의 1명, 보건직 주무관 1명과 함께 올해 채용한 계약직 간호사 1명이 근무 중이다. 지난해에는 간호사도 없었다.
● “거동 불편해도 어쩔 수 없이 시내 병원에”
봉남면에는 약국도 없다. 면내에 있는 의료인은 지소에 있는 치과 공보의와 간호사뿐이다. 지난달 기준 봉남면 인구 2101명 중 1085명(51.6%)이 65세 이상으로 고령화가 심각하다. 그러나 간호사 1명이 주민들의 건강 관리를 책임지고 있어 ‘개인별 맞춤형 관리’는 어렵다. 주민 김순례 씨(80)는 “지소에서 경로당에 와 한 번씩 혈압이나 혈당을 재 주긴 하는데 집집마다 오지는 않아서 경로당에 와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국 보건소·지소 1598곳 중 의사와 간호사가 모두 없는 241곳은 전부 보건지소다. 시군구 단위로 운영되는 보건소보다 의료 여건이 어려운 읍면 지역에 위치한 보건지소가 인력이 더 부족하다.
보건지소에 의사와 간호사가 모두 없는 경우 급성기 질환이 생겼을 때 대처가 어렵다. 경남 지역의 한 보건소 관계자는 “의료기관까지 방문하기 어려운 분을 위해 원격진료를 하고 있지만, 만성질환만 가능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며 “읍면동에 거주하시는 분은 보건지소까지 가는 교통편이 불편해 지소 의료진이 방문 진료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년 3월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돌봄통합지원법)’이 시행되면 해야 하는 방문진료·간호는 엄두도 못 낸다. 통합돌봄은 현재 따로 운영되는 의료와 장기요양, 사회보장 등을 연결해 노인 등에게 종합적인 지원을 제공하려고 추진하는 사업이다. 전북 지역 보건소 관계자는 “통합돌봄에서 방문간호를 하려면 기존보다 한 명씩 자세히 봐야 하는데 간호사가 부족해 방문간호 대상자를 늘리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 보건지소 통폐합-연봉 현실화 등 필요
전문가들은 보건지소를 통폐합하고 인력을 꼭 필요한 곳에 재배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경기 지역의 한 보건소는 공보의가 줄면서 올해 인근에 민간 의료기관이 있는 보건지소 5곳을 폐소했다. 이처럼 민간 의료기관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 위주로 인력을 배치하고, 기존처럼 주민이 찾아오는 방식이 아니라 주민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기능을 재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건소·지소 의사 인력난 해결을 위해 급여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전남 지역 보건소 관계자는 “정규직이든 계약직이든 의사를 채용하려고 노력하는 중인데 공고를 내도 지원자가 없다”며 “민간 의료기관에서 일하면 2, 3배 넘게 벌 수 있어 희생하겠다는 생각이 없으면 현실적으로 오기 힘들다”고 말했다.
의사 없이 간호사만 근무하는 보건지소의 경우 보건진료소처럼 간호사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의료 환경이 좋지 않은 지역에 있는 보건진료소에서는 간호사가 단독으로 간단한 진료와 약 처방, 조제, 예방접종을 할 수 있다. 전북의 한 보건지소 관계자는 “독감 백신을 보건지소에서 보관하고 있는데 의사가 순회진료로 올 때만 접종할 수 있어 주민들이 원하는 때에 백신을 접종할 수 없다”고 했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의사가 없는 지역에서는 보건진료소처럼 간호사의 역할을 확대해 고혈압, 당뇨병 등 만성질환을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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