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多死사회’의 그늘
사망자 느는데 화장시설 제자리… 4, 5일장 치르고 원정 화장까지
봉안당-자연장지도 부족 이중고… “정부 장례복지 차원 적극 나서야”
지난해 12월 암으로 투병하던 언니를 떠나보낸 정수자 씨(50)는 서울 및 인근 지역 화장장을 수소문했지만 예약 가능한 곳을 찾지 못했다. 사망 후 5일째에야 서울 서초구의 화장장을 겨우 예약할 수 있었다. 정 씨는 “화장장 예약 때문에 빈소를 바로 차릴 수 없었다. 언니가 차가운 안치실에 외롭게 누워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화장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유족은 정 씨뿐이 아니다. 빈소를 며칠씩 늦게 차리거나 화장장을 예약하지 못해 3일장이 아닌 4, 5일장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어렵게 화장을 마쳐도 유골을 안치할 봉안당(납골당)이나 자연장지를 구하는 게 쉽지 않다. 고령화로 ‘다사(多死) 사회’에 진입했지만 정작 장사시설은 크게 부족해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올해 1월 사망자 절반만 3일장 치러
31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사망 후 3일 차 화장률’은 2019년 86.2%에서 지난해 77.4%로 낮아졌다. 복지부 관계자는 “나머지는 대부분 4, 5일 차에 화장을 한 경우”라며 “서울과 경기, 부산을 중심으로 사망자 대비 화장시설이 크게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독감과 폐렴으로 고령 사망자가 늘어난 올해 1월에는 이 비율이 전국 평균 53.2%로 뚝 떨어졌다. 부산 20.5%, 경기 26.8%, 서울 46.4% 등이었다. 올해 1월 부산에서는 10명 중 2명만 3일장을 치렀다. 나머지 8명은 4일장 이상이거나 불가피하게 빈소를 늦게 차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거주지 인근에서 화장장을 구하지 못해 다른 지역으로 ‘원정 화장’을 떠나는 사례도 많다. 화장장은 대부분 예약을 받을 때 지역 주민에게 우선권을 준다. 다른 지역 주민은 최대 10배 비싼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황철민 장례지도사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자녀가 화장장 이용이 상대적으로 수월한 지역으로 부모님 주소지를 옮기는 사례까지 있다”고 전했다.
● 화장 후 모실 봉안당-자연장지도 부족
어렵게 화장을 마쳐도 끝이 아니다. 봉안당과 자연장지가 부족해서다. 특히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공설 봉안시설(봉안당·탑·묘·담)은 민간 시설보다 비용이 저렴해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실정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공설 봉안시설은 2023년 말 기준 안치율이 66%로, 잔여분은 69만5110구뿐이다. 지난해 사망자가 약 36만 명이라는 걸 감안하면 잔여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서울시립승화원은 이미 2022년부터 포화 상태라 봉안을 중단했다.
최근 관심이 높아진 수목장 등 자연장지도 사정은 비슷하다. 공설 장지는 공급이 적고, 민간 장지는 비용이 수천만 원에 달할 정도로 비싸 쉽게 이용하기가 어렵다. 임모 씨(43)는 “지난해 2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생전 뜻에 따라 수목장에 모시고 싶었지만 자리가 없어 우선 봉안당에 모셨다”며 “봉안당으로 모신 뒤 1년이 지나 다시 수목장을 알아보니 민간 시설은 부부장 기준으로 1000만 원 가까이 들어 포기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내 사망자 중 화장 비율은 93%. 전문가들은 10∼15년 내에 화장률이 100%에 가까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정선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교수는 “주민 설득을 서두르고 화장장과 함께 마련할 편의시설 조성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봉안당과 자연장지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면 현재 30∼60년인 봉안 기간을 줄이고, 자연장지를 확대해 자연스럽게 유골을 자연장지로 옮기도록 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엄기욱 국립군산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장사시설 문제는 그동안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이제는 ‘장례 복지’ 차원에서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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