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한덕수가 폐기 요청한 ‘계엄 사후 선포문’, 尹 결재까지 한 문서였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7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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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구 前부속실장 내란특검 진술
韓, 김용현 긴급체포뒤 전화 걸어
尹측 법적 문제 알고 은폐 시도 의혹
김건희 특검, 삼부토건 등 압수수색

한덕수 전 국무총리(왼쪽), 윤석열 전 대통령. 2024.04.16.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12·3 비상계엄 이후 뒤늦게 작성된 이른바 ‘사후 계엄 선포문’을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직접 결재한 사실이 3일 확인됐다. 내란특검은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요청으로 이 문건을 폐기하는 과정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보고가 이뤄졌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3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윤 전 대통령의 내란·외환 의혹을 수사 중인 조은석 특별검사팀은 “지난해 12월 7일 대통령께 서명을 받았다”는 내용이 담긴 강의구 전 대통령실 부속실장의 진술서를 확보했다.

비상계엄 선포 당일(지난해 12월 3일) 국무위원들에게 배부된 ‘비상계엄 선포문’에는 국무총리와 국방부 장관 서명이 빠져 있었다. 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 5일 김주현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으로부터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국무위원 서명이 된) 문서로 해야 하는데 관련 문서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은 뒤 새롭게 ‘비상계엄 선포문’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작성했다고 진술했다. 이후 강 전 실장은 한 전 총리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각각 서명을 받았고, 7일엔 윤 전 대통령의 결재를 받았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 전 실장 진술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이 문건 폐기도 보고를 받았다. 강 전 실장은 한 전 총리가 지난해 12월 8일 아침 전화를 걸어 ‘문서가 없더라도 국무회의 실체는 있지 않느냐’고 했고, 이 내용을 이틀 뒤인 10일 윤 전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문서를 폐기했다고 진술했다. 한 전 총리가 전화를 건 시점은 김 전 장관이 내란 혐의로 긴급체포된 직후였다.

강 전 실장은 이 문건을 두고 “행정 절차 차원에서 표지를 만든 것”이란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 측이 한 전 총리 서명을 받지 않은 기존 비상계엄 선포문의 법적 하자를 알아차리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새 문건을 만들려 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은 김 전 민정수석을 불러 당시 상황을 추궁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윤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 의혹을 수사 중인 민중기 특검팀은 이날 ‘삼부토건 주가조작’ 의혹과 관련해 본사와 계열사, 전현직 대표의 자택 등 총 13곳을 압수수색했다.

“불법 계엄 감추려던 ‘사후 문건’ 尹보고뒤 폐기… 증거인멸 의심”


[3대 특검 수사] 내란 특검 ‘사후 계엄 선포문’ 수사
당시 민정수석 “법적 근거 문서있나”… 부속실장 작성, 한덕수 서명-尹 결재
국방장관 체포 직후 “논란될 소지”… 韓 요청으로 尹에 보고 후 없애
쪽지 얼핏 봤다던 이상민, 문건 챙겨


지난해 12월 5일 저녁 강의구 전 대통령실 부속실장은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을 찾았다. ‘비상계엄 선포문’이라고 적힌 문건을 든 채였다. 강 전 실장은 이 문건 공란에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서명을 받았다. 용산구 한남동 국방부 장관 공관에 들러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서명을 받은 후였다. 그리고 이틀 뒤인 7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결재도 받았다. 3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의혹을 수사 중인 조은석 특별검사팀은 최근 강 전 실장 등으로부터 이렇게 만들어진 문건을 한 전 총리 요청에 따라 지난해 12월 10일 폐기했다는 진술을 확보해 진위를 확인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 법률 참모였던 김주현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을 3일 불러 이 문건을 작성한 과정에 윤 전 대통령 지시가 있었는지를 추궁한 것으로 전해졌다.

● 대통령 결재 마친 문건 韓 요구로 10일 폐기

특검팀은 최근 강 전 실장으로부터 지난해 12월 4일 비상계엄 해제 후 하루 뒤인 5일 ‘비상계엄 선포문’이란 제목의 문건을 직접 만들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 전 실장은 “(계엄 선포 당시) 비상계엄 담당 부처인 국방부에서 비상계엄 관련 문서를 만드는 등 행정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제가 문건을 만들어 한 전 총리와 김 전 장관 공관을 방문해 서명을 받았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비상계엄 선포 당일 김 전 장관은 대통령실에 모인 국무위원들에게 계엄 선포 일시와 계엄사령관 이름이 적힌 ‘비상계엄 선포문’을 배부한 후 회람케 했다. 하지만 한 전 총리 등 국무위원들에게 별도의 서명을 받진 않았다고 한다. 이후 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 5일 김 전 수석으로부터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서명)한 문건이 존재하나’란 질문을 들은 뒤 ‘새로운 계엄 선포문을 다시 만들어야겠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 전 실장은 한 전 총리 서명을 받고 이틀 뒤인 지난해 12월 7일 윤 전 대통령의 결재를 받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2일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 마련된 내란 특검 사무실에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2025.7.2. 뉴스1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2일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 마련된 내란 특검 사무실에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2025.7.2. 뉴스1
하지만 대통령 결재를 받은 이 문건은 한 전 총리 요구에 따라 지난해 12월 10일 최종 폐기된 것으로 파악됐다. 강 전 실장은 “한 전 총리가 (12월) 8일 아침 전화를 걸어 ‘사후에 문서를 갖춘 게 논란이 될 듯하니 없던 것으로 하자’며 ‘문서가 없더라도 국무회의 실체는 있지 않은가’라고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이 이날 자진 출석한 김 전 장관을 긴급체포한 직후의 일이었다. 이후 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 10일 대통령 관저로 찾아가 윤 전 대통령에게 한 전 총리와의 통화 내용을 보고했고, 이후 문서를 폐기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대통령 결재까지 완료된 문건을 폐기한 것에 대해 특검은 공용서류무효손상 혐의나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 등을 적용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대통령이 한 전 총리 등의 서명을 받지 않고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은 그 자체로 법률적 하자가 있는데, 이를 숨기기 위해 사후에 문건을 만들려 했다는 게 특검의 시각이다. 헌법 82조는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문서로 하고, 이 문서에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한다고 정하고 있다. 다만 강 전 실장은 특검 조사 등에서 “행정 처리를 하기 위해 ‘비상계엄 선포문’이라고 적힌 표지를 만든 것일 뿐”이라는 취지로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 일각에선 문서 관리자인 대통령이 폐기를 재가한 경우라면 법 위반이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 韓, 문건 폐기 후 “계엄 반대하는 의사 분명히 해”

특검 출석한 前 민정수석-경호차장 김주현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3일 조은석 특별검사팀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청사에 들어가고 있다(왼쪽 사진). 같은 날 윤석열 전 대통령 체포를 방해한 혐의를 받는 김성훈 전 대통령경호처 차장이 특검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문건 폐기 이튿날인 지난해 12월 11일 한 전 총리는 국회에서 열린 긴급 현안질문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두고 “반대하는 의사를 분명히 했고 국무위원들을 소집해 국무회의를 명분으로 대통령의 의지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궁극적으로 막지 못해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죄책감을 느낀다”고 했다.

한 전 총리가 계엄에 동조했는지 등의 실체를 숨기려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정치권에서 제기된다. 평생 관료로 살아온 한 전 총리가 돌연 대선 출마 등을 결정하는 등 이례적 선택을 한 배경에 대해서도 “사후에 만들어진 선포문에 서명했다는 약점이 있기 때문 아니냐”는 해석도 정치권 일각에서 나온다. 특검은 3일 오전 10시부터 김 전 수석에 대해 조사를 이어가며 문건을 만들고 폐기한 경위에 대한 강 전 실장의 진술이 사실인지 등을 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특검은 윤 전 대통령의 체포를 방해한 혐의를 받는 김성훈 전 대통령경호처 차장도 불러 조사했다. 특검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계엄 당일 대통령실에서 문건을 챙기는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도 확보했다. 이 전 장관은 그간 계엄 관련 문건이나 지시를 받은 게 없고 대통령 집무실에서 언론사 단전·단수 내용이 담긴 쪽지를 얼핏 봤을 뿐이라는 취지로 말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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