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대통령실의 ‘성남 도배’, 과거 ‘검찰 도배’와 뭐가 다른가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7월 11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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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취임 한 달 무렵이었다. 대통령실과 내각 요직에 검찰 출신 기용이 잇따르면서 ‘검찰공화국’ 소리가 나오고 있었다(맞다. 전임 윤석열 정권 얘기다). 그래도 아침마다 웃으며 도어스테핑이 이어졌는데 “편중인사가 계속된다” “인재풀이 좁은 것 아니냐”는 질문이 쏟아지자 대통령은 정색을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과거엔 뭐, 민변 출신들이 아주 뭐, 도배를 하지 않았습니까?”

과거 얘기를 하자는 건 아니다. 검찰공화국에 대해선 정권 초부터 나를 포함해(2022년 6월 9일 칼럼 ‘윤석열 검찰공화국’의 내로남불) 숱한 언론이 경고했으나 대통령은 듣지 않았고, 결국 불행한 결말을 맞았다. ‘김건희 특검’과 곧 닥치게 될 ‘검찰개혁’도 불행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궁금한 것이다. 3년 전엔 검찰 출신 대통령의 ‘검찰 도배’ 인사를 놓고 문제 제기라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경기·성남 출신 이재명 대통령이 대통령실 요직 중 요직을 경기·성남 인연으로 도배를 하는데도 왜 별 말이 안 나오는 걸까.

김남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왼쪽) ‘이재명의 입’으로 불리는 김 실장은 이재명 대통령이 성남시장 시절 발탁한 언론인 출신 참모다. 김현지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오른쪽)은 이재명 정부의 ‘실세 중의 실세’로 불린다. 김 비서관의 ‘지브리풍’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동아일보DB
김남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왼쪽) ‘이재명의 입’으로 불리는 김 실장은 이재명 대통령이 성남시장 시절 발탁한 언론인 출신 참모다. 김현지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오른쪽)은 이재명 정부의 ‘실세 중의 실세’로 불린다. 김 비서관의 ‘지브리풍’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동아일보DB


● 성남라인이 차지한 문고리 권력

언론에 ‘성남라인’으로 소개되는 인사는 이 대통령이 성남에서 시민운동을 시작한 1990년대 후반부터 2010년 성남시장-2018년 경기지사를 거치며 긴 시간 같이 일한 사람들을 말한다.

대통령의 그림자처럼 돈과 사람을 챙기는 핵심 업무는 ‘성남 3인방’이 맡았다. 김남준 제1부속실장, 김현지 총무비서관, 김용채 인사비서관이 그들이다(박근혜 청와대 시절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던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이재만 총무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국정홍보비서관을 떠올리면 이들의 무게가 짐작된다). 신라시대로 치면 다른 신분은 범접 못할 성골이고, 김영삼(YS)-김대중(DJ) 대통령 시대로 치면 가신(家臣)급이다. 청와대 1기 행정관들을 선발해 배치한 실무자들도 이들이다. 향후 ‘김현지 라인’ 등이 생길지 모를 일이다.

2021년 9월 28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오른쪽)과 김병욱 당시 민주당 의원이 주먹인사를 나누고 있다. 김 전 의원은 이재명 정부 정무비서관에 기용됐다. 동아일보DB


여기서 끝이 아니다. 국정기획비서관(권순정), 정무비서관(김병욱), 국정과제정책비서관실 선임행정관(김락중) 등 명칭만 봐도 대통령과 근접할 수밖에 없는 벼슬이 성남라인에 돌아갔다. 사회수석(문진영), 춘추관장(김상호), 성평등가족비서관(정정옥) 등 지금까지 알려진 사람만 이 정도다.

이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를 관리하던 변호사들까지 치면 더 늘어난다. 과거 재판 등을 맡았던 민정비서관(이태형), 공직기강비서관(전치영), 법무비서관(이장형)이 민정수석실에 배치됐다. 민정수석과 사법제도비서관만 빼면 거의 보은성 ‘경기 로펌’이라고나 할까.

● “안 됩니다” 말할 참모 없는 집단사고

겨우 열명 남짓 아니냐고? 윤석열 대통령실에선 검찰 출신이 불과 6명이었다. 요직 중 요직이 검사(인사비서관·공직기강비서관·법률비서관)와 검찰 수사관(부속실장·총무비서관·인사기획관) 출신에 돌아갔다는 사실이 더 심각했다. 결국 정권의 명운까지 흔들었기 때문이다.

검찰 도배 인사는 용산에 상명하복의 검찰문화를 심는 데 그치지 않았다. 같은 공간, 같은 생각에 익숙해 있는 그들은 남들 눈에 이상한 일도 너무나 당연하게 보기 쉽다. 대통령을 집단사고에 푹 빠지게 만들기 십상인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2년 6월 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정부에 검찰 출신 인사들이 연이어 기용됐다는 지적에 “과거에는 민변 출신들이 아주 도배를 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동아일보DB

집권 초, 자기 아내를 대통령 부인 수행 역할로 대통령전용기에 태운 사람이 이원모 당시 인사비서관이었다. 대통령실에 ‘김건희 라인’과 대통령 부부 친인척 인사가 판을 치게 된 데는 윤재순 당시 총무비서관의 역할도 무시 못 한다. 2022년 가을 국회에서 그는 대통령실 인원 30% 감축 대선 공약에 대해 “국민 수요가 폭주해 지키기 힘들다”고 했다. 검찰 출신 총무비서관에게 국민이란 윤석열-김건희였던 셈이다.

강의구 전 부속실장은 12·3 비상계엄 이후 이른바 ‘사후 계엄 선포문’을 작성해 불법 계엄을 감추려 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검찰로 도배된 대통령실엔 “안됩니다” 할만한 참모가 없었던 거다(물론 윤석열의 버럭 성질 탓도 컸을 것이다).

● “전쟁입니다”가 상징하는 성남라인 문화

이 대통령은 당 대표로 선출된 지 나흘만인 2022년 9월 1일, 보좌관 김현지가 보낸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국회에서 노출했다. 백현동 대장동 의혹 사건과 관련해 “의원님 출석요구서가 방금 왔습니다. 전쟁입니다”라는 문자 말이다.

대한민국 검찰의 정당한 출석 요구를 전쟁으로 규정한 김현지의 문자는 성남라인의 집단사고와 문화를 상징한다. 정치 보복이라는 프레임에 개딸을 비롯한 지지층은 결집했고, 마침내 ‘전쟁같은 정치’ 3년도 안 돼 이 대통령은 승리할 수 있었다.

2022년 9월 1일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김현지 보좌관이 보낸 텔레그램 메시지를 국회에서 확인하고 있다. “의원님 출석요구서가 방금 왔습니다. 전쟁입니다”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동아일보DB


전쟁의 불을 당겼던 김현지는 1998년 성남시민모임에서 이 대통령을 만났고, 2010년 성남시장이 된 뒤엔 시장 인수위에서 활동했다. 2011년부터는 성남시로부터 지원받는 민관협력기구 ‘성남의제21’ 사무국장을 하면서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개발에 “쾌적한 주거환경 조성” 의견을 밝힌 바 있다. 경기도청에서 이 대통령 부인을 수행했던 배모 씨의 PC파일 삭제도 지시했던(당에선 ‘개인PC’ 파일을 말했다고 설명) 핵심이자 실세다.

강훈식 비서실장은 성남라인과 상관없는, 계파색 옅은 통합형 인사로 알려져 있다. 부디 얼굴마담에 그치지 않기 바란다. 과거 대통령들은 비서실장에 중량급 인사를 앉혀 자신의 약점을 보완했다. 노태우 때 노재봉, YS 때 박관용, DJ 때 김중권, 노무현 때 문희상 비서실장 등이다. 자신감 넘치는 이 대통령 주변엔 약점을 보완해줄 만한 참모가 안 보인다. ‘만사현(김현지)통’ 김현지가 직언을 서슴지 않는다지만, 백현동 때는 왜 안된다 소리를 못했단 말인가(성남시에서 보조금 받는 단체의 김현지가 백현동 개발에 OK한 것도 엄밀히 따지면 이해충돌로 보인다).

● 이해충돌 장관 후보자들, 인사검증 했나

성남라인의 집단사고(思考)는 이미 사고(事故) 수준이다. 초대 장관 후보자들 인사검증을 했는지, 하고도 문제를 못 느꼈는지, 이해충돌 의혹만 벌써 7명이다. 특히 가족이 태양광 사업을 하는데 관련 사업 지원 법안을 발의한 통일부 장관 후보자, 코로나19 방역을 지휘하던 시점에 배우자가 관련 주식에 투자한 의혹이 있는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등은 양심에 털이 난 듯하다(제자 논문 표절에다 자녀를 위법적 조기 유학까지 보낸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언급할 가치도 없다).

기실 이 대통령도 이해충돌 논란을 빚은 적이 있다. 2022년 3월 대선 패배 뒤 한국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 주식 등 방산주를 2억3000만원 어치 사들인 사실이 그해 9월 의원 재산공개에서 드러났다. 6월 보궐선거로 국회 입성한 이 대통령은 7월부터 국방위 상임위 활동을 하고 있었다. 결국 이 대통령은 방산주를 죄다 팔기는 했다. 그러나 이해충돌에 대한 인식이나 반성은 없는 것 같다.

이진숙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달 30일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던 중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이번 대선 유세 중 이 대통령은 “다른 의원들 안 가려는 국방위에 갔더니 ‘이해충돌이다’ ‘내부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샀다’고 하더라”며 “국회의원도 아닐 때 샀는데 무슨 내부정보냐. 15% 손해 보고 팔았다”고 억울해 했다. 그러면서 윤석열-김건희의 삼부토건 주가조작 의혹을 거세게 공격했다.

대통령도 이럴진대 성남라인이 장관 후보자들 의혹을 따질 리 없다. 그 정도가 무슨 문제냐! 윤석열-김건희가 한 짓을 봐라! 후보자들도 청문회 당일만 넘길 속셈, 절대 다수 집권당도 엄호할 작정인 모양이다. 그러면 야당도, 국민도 정부여당의 어지간한 뻔뻔함엔 자연스레 익숙해질 것으로 믿는 듯하다.

● 측근 일색 대통령실은 위험하다

대통령이 대통령실에 측근라인을 둔다는 데 뭐가 문제냐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 숱한 가신을 거느렸던 YS도 국민 눈 무서운 줄 알았다. 박관용 비서실장과 홍인길 총무수석만 측근 출신일 뿐, 관계와 학계에서 실무형 인사를 고루 기용했다는 평을 들었을 정도다. 그럼에도 YS의 집사였던 총무수석이 정치자금 문제로 처벌 받으며 ‘깃털론’을 남겼다. 공식직함 없는 YS 차남이 실세로 뛰다 부친의 임기 말을 불행하게 만든 건 더 큰 비극이었다.

“총무비서관은 막후 실세로 알려진 최측근이 맡는 게 전례”라던 문재인 정권 초 임종석 비서실장도 “그러나 문 대통령은 예산정책 전문 행정공무원에게 맡기기로 했다”며 이정도 총무비서관(현 정부에선 관리비서관) 임명을 발표했다. 원칙을 강조했다는 그가 대통령 딸의 ‘청와대 살림’엔 왜 잠자코 있었는지 궁금하다. 대선캠프 사조직과 다름없는 광흥창팀이 대거 청와대 입성해 문재인 정부도, 민주당 정부도 아닌 ‘청와대 정부’ 노릇을 했던 것도 정권재창출 실패에 기여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살림을 맡았던 이정도 당시 총무비서관. 이재명 정부에서는 관리비서관에 내정돼 대통령실의 청와대 이전을 담당할 예정이다. 동아일보DB

대통령실의 성남라인 도배는 그래서 당연하지 않다. 공식직함 없는 공인(公認) 측근 정진상 전 당 대표 비서실 정무조정실장의 막후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대통령실 편중 인사에 침묵하는 야당의 무능보다 겁나는 건 국민의 무관심과 무감각이다. 이 정부의 성공을 바란다면, 위험 징조에도 눈을 부릅떠야 한다.

#대통령실#성남라인#검찰공화국#인사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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