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연결하는 ‘데이터 고속도로’… 메모리 용량 10배까지 늘린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5월 24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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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 차세대 AI 격전지, CXL
반도체 적게 쓰고도 최대 효과 구현… 데이터센터 운영 비용 절감 가능
글로벌 AI 판도 바꿀 신기술로 주목
2028년 시장 규모 160억 달러 전망… 삼성-SK, CXL 기반 D램 개발 속도
시스템 반도체도 대안 기술 격돌… 엔비디아 맞설 ASIC·FPGA 부상

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ComputeExpress Link·CXL)가 인공지능(AI) 산업과 관련해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의 차기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AI 서버 급증에 힘입어 개화한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의 뒤를 이을 차세대 먹거리인 셈이다. 시장조사업체 폴라리스에 따르면 전 세계 AI 데이터센터 시장은 2034년 1532억 달러(약 213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 막 초입에 들어선 AI 시장 경쟁으로 관련 밸류체인(가치사슬)에서도 신기술 격돌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 HBM 다음 격전지 꼽히는 CXL

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의 줄임말인 CXL은 ‘빠르게 연결해서 연산한다’는 의미다.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 D램 등 다양한 반도체가 들어가는 AI 서버에서 이들 반도체를 효율적으로 연결해 좀 더 빠른 연산 처리를 가능케 하는 인터페이스 기술이다.

CXL 기술을 적용하면 여러 CPU가 하나의 메모리를 공유하거나, 이미 준공이 완료된 서버에 새로운 외부 메모리를 추가하는 게 가능해진다.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CXL 시스템으로 구축한 서버는 1대당 메모리 용량을 8∼10배가량 늘릴 수 있다.

AI 서버에 필요한 대규모 저장 용량을 구현하기 위해 D램을 물리적으로 쌓아 만든 HBM과는 성격이 다르다. HBM이 CPU, GPU 등과 함께 AI 서버의 물리적 구성 요소 중 하나라면, CXL은 이 요소 사이사이를 더욱 빠르게 연결해주는 고속도로와 같은 개념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CXL은 새로운 제품이라기보다는 다양한 방식으로 적용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 기술 표준”이라며 “CXL D램이나 CXL CPU 등이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CXL 개념이 처음 떠오른 건 2019년이다. 주요 빅테크들 사이에서 고용량 데이터센터를 운영하기 위한 비용이 높아지면서 반도체를 최대한 적게 쓰고도 최대 처리 용량을 구현하게 하는 기술의 필요성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에 인텔은 2019년 3월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구글 등 빅테크와 손잡고 서버용 CXL 기술을 공동 개발하고 표준을 정립하는 ‘CXL 컨소시엄’을 출범시켰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해 총 250여 개 기업이 해당 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있다.

본격적인 시장 개화에는 아직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지만 이미 빅테크 고객사들은 CXL 기술 도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인텔은 자사 서버용 CPU 제품 ‘제온’ 프로세서 시리즈에 ‘CXL 2.0’ 최신 모델을 적용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애저(Azure) 데이터센터, 구글의 구글 클라우드, 메타의 AI 서버에서도 CXL 기반 차세대 구조를 시험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욜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글로벌 CXL 시장 규모는 2023년 1400만 달러에서 2028년 160억 달러까지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 HBM 선두 놓친 삼성, CXL 기술 개발 박차

삼성전자 CXL D램 삼성전자가 지난해 말 ‘CXL 2.0’ 기반 고객 인증을 완료한 128GB(기가바이트) D램 제품.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 CXL D램 삼성전자가 지난해 말 ‘CXL 2.0’ 기반 고객 인증을 완료한 128GB(기가바이트) D램 제품. 삼성전자 제공
주요 고객사들의 움직임에 따라 메모리 기업들도 CXL 기술 개발과 적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기존 D램에 CXL 인터페이스를 적용하면 저장 용량이 획기적으로 확대될 뿐만 아니라 전력 효율도 낮출 수 있다는 점을 적극 내세우고 있다.

HBM 시장에서 선두를 놓친 삼성전자는 일찌감치 CXL 투자와 기술 개발에 나섰다. 2021년 5월 업계 최초로 CXL 기반 D램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2023년에는 업계 최초로 CXL 2.0 기술을 지원하는 128GB(기가바이트) D램을 개발해 지난해 말 고객 인증을 마쳤다. 삼성전자는 조만간 256GB 제품의 인증도 마치겠다는 목표다.

삼성전자는 업계 최초로 글로벌 오픈소스 솔루션 기업 레드햇이 인증한 CXL 인프라를 경기 화성캠퍼스 삼성 메모리 리서치센터에 구축하기도 했다. CXL을 적용한 메모리 제품부터 관련 소프트웨어까지 서버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한곳에서 검증할 수 있게 됐다. 이를 통해 CXL 제품 인증을 내부에서 자체 완료하고 신속한 제품 개발이 가능해졌다고 삼성전자는 밝혔다.

SK하이닉스 CXL D램 SK하이닉스가 ‘CXL 2.0’ 기반 고객 인증을 완료한 96GB(기가바이트) D램 제품. SK하이닉스 제공
SK하이닉스 CXL D램 SK하이닉스가 ‘CXL 2.0’ 기반 고객 인증을 완료한 96GB(기가바이트) D램 제품. SK하이닉스 제공
전 세계 메모리 2위 기업 SK하이닉스도 지난달 23일 CXL 2.0 기반 96GB DDR5 D램 제품의 고객 인증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회사는 이 소식을 전하면서 “서버 시스템에 이 제품을 적용하면 기존 DDR5 모듈 대비 용량이 50% 늘어나고, 제품 자체의 대역폭도 30% 확장돼 초당 36GB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다”며 “이는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운영하는 고객이 투입하는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128GB 제품도 다른 고객사와 인증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3위 마이크론은 2023년 CXL 2.0 기반 256GB 메모리 확장 모듈을 내놓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추격에 나섰다. 메모리 모듈은 서버에 직접 들어가는 D램 칩 자체와 달리 외장형 메모리 확장 카드와 같은 추가 장치를 말한다. 이달 중에 최신 버전 CXL 기술인 ‘CXL 3.0’ 메모리 호환성 검증에도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 AI 두뇌 칩에서도 대안 기술 모색 치열

글로벌 AI 시장이 급성장하는 만큼 메모리 외에 AI의 ‘두뇌’에 해당하는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기존 주류인 GPU에 맞설 대안 기술의 격돌이 일어나고 있다. 엔비디아가 독주하고 있는 GPU에 맞설 주문형반도체(ASIC)와 프로그래머블 반도체(FPGA) 기반 AI 기술 등이다.

이런 기술 개발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중국이다. 미국의 AI 반도체 수출 통제 이후 엔비디아 칩에서 독립해 ‘AI 굴기’를 이뤄야 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올 3월 화웨이가 양산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진 ‘어센드910C’는 엔비디아의 ‘H100’과 달리 GPU 기반이 아닌 ASIC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ASIC은 GPU보다 범용성은 떨어지더라도 특정 서비스 맞춤형으로 개발할 경우 비용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화웨이 외에 구글의 생성형 AI 서비스인 제미나이가 ASIC 기반으로 자체 설계됐다. 전체 AI 칩 시장에서 GPU가 80% 이상, ASIC은 약 10%대 중반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인텔이 채택하고 있는 FPGA도 있다. 아직 전체 AI 칩 시장에서 점유율은 한 자릿수로 미미하지만 ASIC과 마찬가지로 AI 추론에 적용할 수 있으며 가격도 GPU보다 저렴하다. 로봇이나 자율주행차 등 특정 분야에서 집중적인 AI 연산이 가능한 대안 기술이다. 올 3월 글로벌 FPGA 분야 학술대회인 ‘FPGA 2025’에서 중국 연구팀이 처음으로 최우수 논문상을 수상해 관련 업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AI가 이끄는 서버 시장은 이제 막 초입에 들어섰다. 향후 수년간은 다양한 분야에서 기존 주력 기술을 넘어서는 신기술 각축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연초 딥시크 쇼크가 글로벌 AI 시장을 뒤흔드는 ‘발상의 전환’을 가져왔듯, 앞으로도 메모리와 시스템, 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서 계속 판을 바꾸기 위한 기술 경쟁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CXL
CXL이란 ‘빠르게 연결해서 연산한다’는 의미를 지닌 ‘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의 줄임말로 주로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서버 등 고성능 컴퓨팅 시스템 안에서 그래픽처리장치(GPU), 중앙처리장치(CPU), 메모리 등 핵심 반도체들을 효율적으로 연결해 보다 빠른 데이터 처리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다. 무수히 많은 양의 데이터가 막힘없이 효율적으로 오갈 수 있는 고속도로로 비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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