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인재 엑소더스]
석학들 “美-中처럼 고연봉 못주면… 연구비 걱정이라도 덜어줘야”
젊은 과학자들 “우릴 계약직 아닌… 국가 전략적 자산으로 바라봐주길”
정부, 인재 DB화 ‘K링크트인’ 추진
국내 과학기술 분야 석학들은 이공계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해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의 불확실성을 줄여 과학기술인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게 가장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연구비 걱정 없이 국내에서도 오랫동안 혁신적 연구를 이어갈 수 있도록 보장하고, 인센티브 등 처우 개선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왼쪽부터)김윤영, 오우택, 조길원, 김근수, 윤효재.
동아일보는 최근 국내 석학 5명과 간담회를 열고 한국 과학기술 인재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해 필요한 정책 방향을 들었다. 대담에는 김윤영 숙명여대 기계시스템학부 석좌교수, 오우택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뇌과학연구소장, 조길원 포스텍 유니버시티 교수, 김근수 연세대 물리학과 교수, 윤효재 고려대 화학과 교수가 참석했다.
이들은 시급한 개선 과제로 안정적 R&D 예산 확보를 첫손에 꼽았다. 조길원 교수는 “지난해 R&D 예산 삭감은 과학자들에게 너무 큰 절망을 안겨줬다”며 “이제는 정부와 쓴 연구비 계약서마저 믿지 못하게 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오우택 소장은 “정권에 따라 달라지는 연구비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도록 법제화가 필요하다”며 “차기 정부가 과학자들을 국내에 잡아두고 싶다면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당장 미국 중국만큼 고연봉을 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국내에서 연구를 이어나가도 성과를 낼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는 것이 석학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김근수 교수는 “현실적으로 연봉을 크게 높일 수 없다면 안정적으로 연구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거나, 과학자에 대한 철저한 예우를 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윤영 석좌교수는 “은퇴를 앞둔 시점에 정말 좋은 논문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축적된 노하우와 네트워크를 일종의 무형문화재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경우 양원(중국과학원, 중국공정원)이 선정하는 최고 과학자 직책인 원사로 뽑히면 차관급 대우를 받으며 정년에 구애받지 않고 소속 기관에서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다.
한국 과학기술의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과학자들의 요구는 더욱 절박하다. 45세 이하 젊은 과학자들이 소속된 한국차세대과학기술한림원(YKAST) 회원들은 “과학기술인을 계약직 연구노동자가 아닌 국가의 전략적 자산으로 인식해 연금형 장기 보상 등 실질적 복지 체계를 지원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YKAST 소속 윤효재 교수는 “차기 정부가 과학기술에 운명을 걸지 않으면 골든타임을 놓쳐 더는 세계 무대에서 빛을 보지 못하는 국가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했다. YKAST 간사인 권순경 경상국립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단기 연구비 지원만이 아니라 초중등교육-대학-연구소-산업계까지 이어지는 전 주기 육성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신유정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는 “시류에 휩쓸려 너무 많은 관심과 예산이 인공지능(AI) 등 특정 분야로만 쏠릴 경우 기초과학 분야가 소외될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과학기술 인재 현황을 정부 차원에서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은 정부와 민간에 산재돼 있는 국내 과학기술 인재의 연구 이력과 현황 등을 한데 모아 기업들이 인재 영입에 활용할 수 있도록 ‘K링크트인’(가칭) 구축을 추진 중이다. ‘K링크트인’ 아이디어는 한 대기업 인사 담당 임원이 과기부가 주최한 인재 대책 간담회에서 “기업도 인재 확보에 활용할 수 있는 과학기술 인재 데이터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정부에 제안한 데서 출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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