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72년 만에 배임죄 폐지… 불합리한 경제형벌 확 줄여야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9월 30일 23시 30분


코멘트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0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경제형벌 민사책임 합리화 당정협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0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경제형벌 민사책임 합리화 당정협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과도한 경제 형벌은 기업에 부담을 준다”며 배임죄 폐지 추진을 공식화했다. 30일 당정은 선의의 사업주 보호를 골자로 한 ‘경제 형벌 합리화 1차 방안’을 발표했다. 방안이 현실화하면 1953년 형법 제정과 함께 도입된 배임죄가 72년 만에 사라지게 된다. 경제단체들은 “경영 불확실성이 줄어들고 기업 활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일제히 환영했다.

형법·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법 등에 규정된 배임죄는 기준이 모호해 수사기관과 법원이 자의적으로 판단할 여지가 크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오죽하면 ‘삼라만상이 모두 형사 처벌 대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실제로 기업인 수사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된 죄목이 배임죄였다. 합리적 경영 판단으로 투자나 신사업을 진행해도 결과적으로 손해가 나면 처벌받을 수 있고, 심지어 손해가 발생할 위험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도 기소된 사례까지 있었다. 기업들은 리스크를 감수하고 열심히 일할수록 배임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하소연해 왔다.

해외 주요 국가들과 비교해도 한국의 배임죄는 과도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배임죄가 아예 없다. 주로 손해배상 등 민사적 수단으로 해결하거나 필요하면 사기죄로 다룬다. 한국 형법에 영향을 준 독일과 일본에는 배임죄가 있지만 적용 요건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경영상 판단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고, 일본은 고의성이 명확하게 입증됐을 때만 처벌한다. 특히 한국처럼 특별법으로 배임죄를 가중처벌해 최대 무기징역까지 받도록 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오랫동안 유지돼 온 배임죄가 갑자기 사라질 경우 법적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동안 배임죄가 횡령·사기죄로 처벌하지 못하는 영역을 메워 온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회사 대표가 회사 재산을 자의적으로 사용하는 행위를 제때 제어하기 어렵고, 공기업·공공기관 등 비상장 조직에서 내부자 전횡을 견제하는 장치가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충분한 논의를 바탕으로 보완 입법이 병행돼야 할 것이다.

형사 처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기업들이 위험을 회피하고 외국인들은 한국 투자를 주저하는 현실은 정상적이지 않다. 이참에 기업인들이 교도소 담장 위에서 외줄타기를 하게 만드는 5886개 경제 형벌 규정을 과감하게 걷어낼 필요가 있다. 언제든 범죄자가 될 수 있는 환경을 개선하지 않고선 기업인들에게 과감한 혁신과 도전, 적극적인 투자와 고용을 주문하기 어려울 것이다.


#배임죄#경제 형벌#기업 부담#더불어민주당#형법 개정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