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미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워싱턴=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매우 흥미로운 제안입니다. 우리가 당신(이재명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의 회담을 주선하겠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5일(현지 시간)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10월 31일부터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날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시작된 북-미 정상회담 성사 과정을 거론하며 “올해 김 위원장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대화 의지를 거듭 강조해온 가운데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APEC 정상회의를 통해 북-미 정상 대화를 복원하는 ‘APEC 구상’이 공개적으로 논의된 것. 두 정상은 이날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의 이름만 13번 거론했을 정도로 회담의 상당 시간을 북한 문제에 할애했다.
● APEC 북-미 회담 구상에 트럼프 “슬기로운 제안”
이 대통령은 이날 회담에서 북-미 대화 재개를 먼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안했다. 이 대통령은 “저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만남을 고대한다”며 “그(김 위원장)는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반색했다. 그는 “김 위원장과 저는 아주 좋은 관계를 가졌고 지금도 그렇다”며 “저는 올해 그(김정은)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또 “우리는 남북 문제와 관련해 무언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당신은 내가 이전에 함께 일했던 다른 한국의 지도자들보다 그런 일을 할 의지가 더 강한 것 같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느냐는 질문에 “난 갈 수 있다고 본다”며 “무역회의(trade meeting)를 위해 곧 한국에 갈 것이다. 한국이 무역 회의를 주재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 회의에서 잠시 빠져나와서 (이) 대통령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일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직후 예정에 없이 한국을 방문해 판문점에서 김 위원장을 만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APEC 정상회의 참석 시 김 위원장과 만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그렇다”며 “한국과 관련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사람들을 만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미 정상은 비공개 오찬 회담에서도 북-미 대화에 대한 논의를 이어갔다. 대통령실 강유정 대변인에 따르면 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APEC 정상회의에 초청하며 “김 위원장과의 만남도 추진하자”고 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매우 슬기로운 제안”이라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측 배석자들에게 “김 위원장을 만나라고 한 지도자는 처음”이라며 “이 대통령은 정말 스마트한 사람”이라고 했다고 한다.
● 대통령실 “김 위원장 APEC 초청, 구체화시킬 것”
대통령실 3실장, 정상회담 결과 브리핑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과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김용범 정책실장(왼쪽부터)이 25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의 한 호텔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워싱턴=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단절된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의 돌파구로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 북한 초청 카드는 꾸준히 거론돼 왔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워싱턴 현지 브리핑에서 APEC을 계기로 한 북-미 대화에 대해 “구상 단계의 초기”라며 “조금 더 상의하고 구체화시켜야 할 과제”라고 했다. 강 대변인은 ‘APEC에 북한 초청을 추진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온다면 김 위원장과 만나는 게 어떻겠느냐고 일종의 선후 관계가 있는 제안이었다”며 “아마 그 부분은 연동이 돼서 움직이지 않을까 예측된다”고 밝혔다.
문제는 북한의 호응 여부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달 담화에서 APEC 정상회의에 김 위원장 초청이 거론되는 데 대해 “헛된 망상을 키우고 있다”고 일축한 바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번 회담에서 한미 정상 간 북한 문제에 대한 공감대는 상당 부분 형성됐지만 북한이 호응할 만한 내용은 거의 없었다”면서도 “북한 입장에서 대화를 원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를 어떻게 활용할지 내부적으로 고민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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