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구치소 속 회복의 시간 [따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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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년 7월 24일 1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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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부구치소 심리치료팀은 철창 안에서 상처 입은 수용자들의 마음을 하나하나 꺼내어 위로하고 회복의 길을 함께 걷는다.
형벌의 공간에서도,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려는 두 사람의 진심이 오늘도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
서울동부구치소 심리치료팀은 철창 안에서 상처 입은 수용자들의 마음을 하나하나 꺼내어 위로하고 회복의 길을 함께 걷는다. 형벌의 공간에서도,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려는 두 사람의 진심이 오늘도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

“다시는 안 들어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서울동부구치소. 철문 너머에선 형벌이 집행되지만, 그 안쪽 어딘가에서는 치유가 시작된다. 심리치료팀의 왕준기 교사와 송민기 교도는 오늘도 수용자의 이야기를 듣는다. 누군가는 죄를 묻지만, 이들은 마음을 묻는다.

왕 교사와 송 교도는 매일 수용자들의 이야기를 꺼내 듣는다. 아무도 묻지 않았던 상처,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던 기억을 품는 것이 이들의 하루다.

왕 교사는 상담 전 수용자의 기록부터 읽는다. 범죄 사실보다 먼저 살펴보는 건 성장 배경이다. 누가, 어떻게 이 사람을 길러냈는지. 어떤 언어로 세상을 배웠는지.

“수용자들에게 저희가 마지막 남은 소통 창구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여기서 여러 가지 이유로 위축된 사람들은, 우리 외에는 마음을 터놓을 곳이 없어요.”


마음을 묻는 사람들

서울동부구치소 심리치료팀 송민기 교도 (사진=최강주 기자, gamja822@donga.com)
서울동부구치소 심리치료팀 송민기 교도 (사진=최강주 기자, gamja822@donga.com)

가끔은 단 한 문장이 전부일 때도 있다. “그렇게 힘들었구나.” 수용자가 “정말 힘들었어요”라고 말했을 때, 그 말을 그대로 되돌려주는 것. 이 단순한 에코잉의 한 문장이 수용자의 얼굴에 처음으로 흔들림을 만든다.

기억에 남는 수용자도 많다. 송 교도는 폭력 전과에 반사회적 성향을 보이던 수용자가 자살을 시도하던 동료를 살려낸 사건을 떠올린다. 그는 우울감을 호소하던 동료를 유심히 지켜보다, 새벽에 목숨을 구했다.

“동료의 어려움을 차마 두고 볼 수 없었다고 진술했어요. 그걸 보면서 인간의 변화 가능성을 깨달았습니다.”

서울동부구치소 심리치료팀 왕준기 교사 (사진=최강주 기자, gamja822@donga.com)
서울동부구치소 심리치료팀 왕준기 교사 (사진=최강주 기자, gamja822@donga.com)

왕 교사에게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한 수용자는 중학교 시절 학교폭력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피부를 뜯고, 머리카락을 뽑는 자해 행위를 반복했다. 그의 정신은 과거에 갇혀 있었다.

“그 사람의 정신세계는 계속 과거에 매달려 있었어요. 고통스러운 기억을 꺼냈다가 넣고, 또 꺼냈다가 넣고… 그 반복 속에서 결국 사람은 미쳐갑니다.”

왕 교사는 신뢰를 쌓은 뒤 상담실 한가운데 빈 의자를 놓았다. “여기, 당신을 괴롭혔던 사람이 앉아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수용자는 처음엔 말을 잇지 못했지만, 곧 감정이 터져 나왔다. 마치 한을 푸는 듯 억눌려 있던 말들이 쏟아졌다. 그날 이후 자해 습관은 줄었고, 자기 비하도 서서히 사라졌다.

“그 사람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준 순간이었어요. 저한테도 정말 큰 경험이었죠.”

사진=게티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

모든 수용자가 마음을 여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나한텐 필요 없어요”라고 말한다. 그럴수록 심리치료팀은 더욱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나를 위해 애쓰는 단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그렇게 기다리다 보면 문은 열린다.

“저항하는 수용자도 있고, 누군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협조적으로 나와요. 단계 차이지, 결국엔 마음을 엽니다.”

처음엔 “나는 문제 없어” 라며 방어하던 이들도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서울동부구치소 심리치료팀 송민기 교도, 왕준기 교사 (사진=최강주 기자, gamja822@donga.com)
서울동부구치소 심리치료팀 송민기 교도, 왕준기 교사 (사진=최강주 기자, gamja822@donga.com)


심리치료팀은 매달 200건 이상의 상담을 진행한다. 재소자뿐 아니라, 감정을 내색하지 못한 채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는 교정 공무원들까지 상담 대상이다.

송 교도는 상담이 몰리는 날, 우선순위를 고민한다. “지금 내가 집중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때론 선택이 아쉽다. 오랜 시간 쌓은 신뢰 관계를 다른 상담자에게 넘길 때는 더욱 그렇다.


외로운 공간 속, 단 한 명의 지지자

사진=게티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

이들은 “사람에 대한 사랑과 관심 없이는 상담이 성립되지 않는다” 고 말한다. 실제로도 수용자의 삶이 지지와 관심을 통해 변화하는 순간이 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이나 관심이 메마른 상태라면, 상담하는 사람이 먼저 더 많이 사랑과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노력하고 있어요.”


왕 교사는 종종 상담 중 수용자에게 말한다. “너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그러면 울음을 터뜨리거나, 연신 감사 인사를 전하는 이도 있다.

접견도, 전화도, 보관금도 없는 수용자가 있었다. 왕 교사가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라고 물었을 뿐인데, 그는 “그 말 한마디가 너무 감사했다”고 했다.

“보관금도 없고, 접견이나 전화도 없는 수용자였어요.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 기관에서 자신을 신경 쓰고 있다는 점이 그렇게 크게 다가왔던 거예요.”


서울동부구치소 심리치료팀 송민기 교도 (사진=최강주 기자, gamja822@donga.com)
서울동부구치소 심리치료팀 송민기 교도 (사진=최강주 기자, gamja822@donga.com)

사람은 지지를 받지 못하면 자존감을 잃고, 자포자기에 빠진다. 그래서 심리치료팀은 ‘역할’을 부여한다.

“거칠게 살던 분이 있었어요. 한 번도 반장을 해본 적 없는 분이었는데, 공장 반장 역할을 맡겼더니 사람이 확 바뀌더라고요.”

그 수용자는 자신을 “항상 뒤에 있다가, 선생님이 부르면 나가서 맞는 역할을 하던 사람”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완장을 차고 모자를 쓰고, 다른 수용자를 이끄는 역할을 열정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역할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 정말 맞습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기대가 걸렸다는 걸 느끼면 그 기대에 부응하려고 하게 돼요. 저희는 그런 자기 효능감을 찾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는 거죠.”

이들은 “해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내담자 안에 이미 존재하는 해답을 스스로 찾도록 돕는 것” 이라고 말한다.

“그 사람은 이미 강한 사람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저희는 다만 그 선택지를 함께 확인하고,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예요.”

교정 공무원과 상담사 사이, 이중적인 역할

서울동부구치소 심리치료팀 왕준기 교사 (사진=최강주 기자, gamja822@donga.com)
서울동부구치소 심리치료팀 왕준기 교사 (사진=최강주 기자, gamja822@donga.com)

교정상담은 항상 이중적이다. 한쪽에선 형벌의 집행자, 또 다른 쪽에선 온화한 상담자.

“이 두 역할은 양립되기 정말 어려워요. 그래서 상담은 더 조심스럽고 더 깊게 들어가야 합니다.”

상담의 기본은 무조건적인 경청이지만, 교정상담은 다르다. 대부분 비자발적이다. 그래서 왕 교사는 듣기보다 ‘먼저 다가가기’를 택한다.

왕 교사는 민원실에서 일하다 심리치료로 전보됐다. 송 교도는 심리학을 전공하고 교정직에 들어왔다. 처음엔 낯설었고, 힘들었고, 화도 났다.

사진=게티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

그러나 반복되는 만남 속에서, 이들은 알게 되었다. 수용자도 결국 사람이라는 것을. “보안 업무만 했으면 이렇게 수용자를 이해하지 못했을 거예요.”

서울동부구치소 심리치료실의 문은 매일 열린다. 그 안에서는 오늘도 누군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이들, 바로 이들이 교정의 시작이다.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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