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반도체, ‘이 없으면 잇몸’ 대응… 자체기술 개발 속도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11일 03시 00분


코멘트

美 전자설계자동화 SW 수출 막자
中 대규모 투자, 첨단공정 상용화
저성능 장비로 수율 끌어올리기도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제동을 걸기 위해 반도체 완제품과 장비에 이어 설계 소프트웨어 수출을 통제하고 나섰다. 하지만 중국 반도체 업계가 ‘이가 없으면 잇몸’ 식으로 대응하면서 중국의 반도체 자립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10일 외신 및 업계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지난달 말 시놉시스와 케이던스, 지멘스 등 주요 전자설계자동화(EDA) 소프트웨어 업체에 중국 수출 중단을 요청했다. 이에 해당 업체들은 중국 고객사에 서비스 제공을 중단했다. 중국 사업 비중이 큰 시놉시스와 케이던스 주가가 하루 만에 각각 9.6%, 10.7% 하락하기도 했다.

미국이 EDA 수출 규제에 나선 것은 중국의 인공지능(AI) 반도체 자립을 막기 위해 기존 수준을 뛰어넘는 기술 규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EDA는 반도체 설계와 검증에 필요한 기술로, 반도체 회로를 웨이퍼에 새겨 넣는 노광장비와 함께 중국 반도체 산업의 ‘약한 고리’ 중 하나로 꼽힌다. 현재 미국산 소프트웨어가 중국 시장의 80% 안팎을 점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중 대표단의 통상 교섭 테이블에서도 EDA 수출 규제 문제가 다뤄졌다. 미국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과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중국 허리펑(何立峰) 부총리 등 양국 통상 대표는 9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에서 만나 미국의 EDA 등 기술 수출 규제와 중국의 희토류 등 핵심 광물 수출 제한을 두고 협상을 벌였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미국 규제에 맞서 중국은 EDA 및 반도체 장비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집행하고 있다. 중국 EDA 업체 엠피리언 테크놀로지는 2023년 14나노(nm·1nm는 10억분의 1m) 공정을 지원하는 EDA를 상용화했고, 현재는 7나노 수준에 근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업계의 5나노 이하 공정 기술력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도체 규제에 대한 중국의 대응 방식은 네덜란드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수출 통제 사례에서도 잘 나타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월 중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 SMIC가 7나노급 공정이 필요한 화웨이의 AI 칩 수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고 전했다. 미세공정이 필요한 AI 칩 생산에는 EUV 장비가 필수적이지만 SMIC는 수출 규제로 EUV를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심자외선(DUV)만으로 수율을 끌어올린 것으로 전해진다. DUV로는 한 번에 미세한 회로를 새길 수 없어 여러 번 노광과 식각을 반복해 회로를 새겨야 한다. FT는 “중국이 수출 통제 상황에서도 AI 인프라 마련에 획기적인 진전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서 미국의 반도체 규제가 오히려 중국의 반도체 자립을 촉진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교수는 “미국의 대중 규제가 바이든 정부에서 추진했던 수준의 핀포인트 제재를 계속 이어가지 못하는 한 오히려 중국 반도체 자립을 촉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중국#반도체#EDA 수출 규제#반도체 굴기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