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8월부터 전력 영향평가 시행… 수도권 신청 195건 중 4건만 통과
대기업도 실패… 수도권 전력 ‘별따기’
전기 사용 신청 88%가 非ICT… 데이터센터 유행 이용 ‘알박기’ 기승
“지방 분산 위한 세제 혜택 등 필요”
최근 11개월 동안 수도권에만 데이터센터 사용 목적으로 원자력 발전소 20기 규모의 전기 사용 신청이 접수된 것으로 나타났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데이터센터 확보가 국가적인 핵심 과제로 꼽히지만 수도권 과밀 현상과 이에 따른 전력난으로 국내 산업계가 ‘병목’ 현상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에서 제출받은 전력계통영향평가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8월부터 올 6월까지 데이터센터 목적으로 한전에 전기 사용 신청서를 낸 건수는 총 290건으로 집계됐다. 이 중 67%인 195건이 수도권 전기 사용으로 접수됐다. 수도권에 접수된 195건 전기 용량은 20GW(기가와트)다. 이는 1GW급 원전 20기를 가동해야 만들 수 있는 규모다.
정부는 지난해 8월부터 전력 여유, 자립도 등 전기 사용의 적정성을 평가하는 전력계통영향평가를 시행 중이다. 특정 지역의 전력 수요 과밀화를 완화하고 지방 분산을 활성화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해당 제도 시행 이후 수도권에서 기업들이 전기를 확보하는 것이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수준으로 어려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업자가 낸 195건의 신청서 중 한전 검토를 거쳐 산업부 심사까지 간 경우는 33건이다. 33건 가운데 수도권은 19건으로 최종 4건(21%)이 통과했고, 비수도권은 14건 중 10건(71%)이 통과했다.
실제 한 IT 대기업은 올 3월 용산 데이터센터 증설을 위해 40MW 규모의 전기사용 신청서(전력계통영향평가서)를 산업부에 냈으나 통과하지 못했다. 용산 데이터센터를 쓰려는 고객 수요는 계속 늘어나는데 전력 확보에 실패하며 사업을 확장하는 데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유휴 전력이 많은 지방으로 가라지만 수도권과 비교해 고객 수요가 없고 비용만 늘어나는 구조여서 인프라 이전이 마땅치 않다”고 했다.
● “지방 분산 위한 세제 혜택 등 필요”
업계에서는 ‘데이터센터 유행’을 이용한 투자사, 건설사들의 이른바 알박기 행태 때문에 전력난이 더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전에 따르면 전국 데이터센터용으로 전기 사용 신청을 한 290건 중 12%인 35건만이 정보통신기술(ICT) 업체에서 냈다. 나머지 88%는 ICT와 무관한 업체들이었다. 이 중 한 업체가 13건을 신청한 사례도 있다. 한전 관계자는 “부동산 업체가 ‘알박기’ 목적으로 전기를 확보한 뒤 이를 실제 ICT 업체에 사용권을 팔아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데이터센터 전력난을 악용한 업체들 때문에 전기가 필요한 선의의 업체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했다.
근본적으로는 데이터센터 지방 분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종호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원전 20기에서 발전하는 규모의 전기를 수도권에서 모두 충당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세제 혜택, 전기료 할인 등 기업들이 지방으로 이전하기 위한 경제적 유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종배 건국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수도권은 소규모 AI 데이터센터 중심으로 확충하고 대형 데이터센터를 지방에 늘려야 한다”고 했다.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를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근 “모든 지역에서 전기 요금을 동일하게 받는 것은 잘못된 발상”이라며 “발전소에서 가까운 곳은 싸고 비용이 많이 드는 먼 곳이 더 많이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SK그룹은 미국 아마존웹서비스(AWS)와 울산에 최대 103MW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지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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