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전직 정치인이 언론 인터뷰에서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치료제에 마약 성분이 들어 있다”고 한 발언이 충격을 줬다. 최근 ADHD 치료제의 공급 부족 사태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며 이 약물들이 일명 ‘공부 잘하는 약’으로 오남용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사실과 다르다. 미국의 국가 통계를 보면 1997년 6.1%였던 소아청소년의 ADHD 유병률은 2016년 10.2%로 증가했다. 일반적으로 유병률은 국내외 통계가 유사해 소아청소년에서는 11%, 성인에서는 4.4%의 인구가 ADHD를 앓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인구를 고려하면 소아청소년과 성인에서 각각 70만 명 넘는 ADHD 유병 환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2014년 국가통계포털(KOSIS)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HIRA) 자료에 따르면 ADHD로 치료받는 환자 수는 소아청소년의 6.8%, 성인에서는 0.4%에 불과하다. 2016년 ADHD 치료제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가 성인까지 확대 적용된 이후 치료율은 소아청소년 22.3%, 성인 16.3%로 증가했으나 약물 오남용을 우려할 정도로 높은 수준은 아니다. 여전히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받는 ADHD 성인이 20%에도 미치지 못해 ADHD 성인은 반복되는 음주 운전, 분노 조절 실패, 잦은 이직 등으로 생활의 어려움을 겪고도 병원을 찾을 가능성이 적다.
18세 이후 ADHD로 진단받은 174명을 대상으로 5년 동안 약물치료 기록을 후향적으로 검토한 국내 연구에 따르면 ADHD 치료제와 관련된 중독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다. 전문의의 적절한 진단에 의해 치료를 받는 경우 메틸페니데이트의 오남용 사례가 드물다는 의미다. 오히려 보호자가 돌보는 소아청소년 ADHD 환자와는 달리 자립적으로 생활하는 성인 환자는 치료에 대한 순응도가 낮아 임의로 약물치료를 중단하는 사례가 많다.
그렇다면 왜 ADHD 약물이 오남용되고 있다는 오해가 생겨났을까? 성인에서 ADHD를 진단하려면 12세 이전에 ADHD가 있었는지를 확인해야 하는데 기억이 부정확해 현재의 ADHD 경험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스스로를 ADHD라고 진단하고 해결책을 요구하는 환자의 압력으로 인해 철저한 평가 없이 약이 처방될 수도 있다. 또 ADHD뿐만 아니라 우울증과 같은 다른 질환에 의해서도 집중력 저하가 나타날 수 있는데 ADHD로 오진되기도 한다.
ADHD로 진단돼 메틸페니데이트를 처방받은 환자가 임의로 약 복용을 중단하면 증상이 재발한다. 또한 ADHD가 치료 되지 않으면 알코올이나 마약 등에 중독되기도 쉽다. 이때 환자는 자신이 마약에 중독된 이유가 ADHD 약 때문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국내에서 ADHD 치료제 중 자극제로 사용할 수 있는 약물은 메틸페니데이트 계열이 유일하다. 이 성분은 마약에 해당되지 않지만 국내 의약품 규정상 마약류로 분류돼 있어 까다로운 규제 대상이다. 약의 의존성을 낮추도록 개발된 장기 지속형 메틸페니데이트 역시 마약류로 분류돼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에서는 단 두 종류의 제품만이 공급되고 있는 처지다. 해외에서 ADHD 치료제로 인정받아 널리 사용되는 암페타민 제제도 국내는 수입이 전면 금지돼 사용할 수 없다.
최근 10년간 우리나라 ADHD 진단율과 치료율이 빠르게 늘어난 것은 고무적인 사실이다. 그러나 여러 연구에서 보고된 유병률에 비하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ADHD와 관련돼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적절한 자격을 갖춘 전문의의 종합적인 평가와 검사를 통해 적시에 올바른 진단을 받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또한 ADHD 치료제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한편 필요한 의약품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아 치료가 중단되지 않도록 사회적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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