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가의 보도’ 된 직권남용죄, 구성요건 명확히 해야[기고/이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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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교수
이종수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교수
대통령실은 7월 24일 정치보복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는 직권남용죄의 무분별한 남용을 막기 위해 법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재명 대통령은 고위 공직자 워크숍에서 “부하가 하기 싫었는데 하면 (권력)남용이고, 흔쾌히 하고 싶어서 했으면 무죄냐”라며 직권남용죄의 제한적 적용을 강조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검찰청에 직권남용죄 수사를 신중히 하라고 지시했다. 직권남용죄가 다시금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이다.

형법 제123조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타인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 행사를 방해한 경우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형법의 ‘변방’에 머물던 직권남용죄는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과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을 거치며 대표적인 권력형 범죄로서 형법의 ‘중앙무대’에 올라섰다.

직권남용죄는 구성요건이 추상적이고, 해석에 따라 적용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유사한 규정을 둔 일본이나 독일에서도 실제 기소돼 유죄판결로 이어지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공무원의 부패범죄는 엄벌해야 마땅하지만, 직권남용죄가 직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소 부당하거나 강압적인 업무 지시까지 형사처벌하는 ‘전가의 보도’가 돼서는 안 된다. 권성 전 헌법재판관의 지적처럼 직권남용죄는 특히 정권 교체 후 전임 정부에서 활동한 고위 공직자를 상징적으로 처벌하는 데 악용될 소지가 있다.

더구나 새로운 형사사법 체계 아래에서 직권남용죄는 수사권 확장의 수단이 될 수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고위공직자 범죄’, 검찰이나 최근 설치 논의 중인 중대범죄수사청은 ‘중대 범죄’에 대한 수사만을 할 수 있도록 수사권이 제한돼 있으나 직권남용죄를 ‘관련 범죄’로 엮으면 수사 범위가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 이처럼 직권남용죄는 때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때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범죄가 돼 왔다.

대법원은 일반적 직무범위를 벗어난 ‘월권행위’에는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으며,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임직원에 대한 적용에는 ‘특별한 사정’이 필요하다고 봐 이 범죄를 제한적으로 해석해 왔다. 이 대통령이 언급했듯이, 적극적인 직무수행 과정에서 일부 논란이 있더라도 형사책임을 묻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

문제는 직권남용죄의 칼날이 부패한 공직자뿐 아니라 법관의 판결이나 검사의 수사·기소 결정까지 겨누고 있다는 점이다. 판사와 검사의 위법한 권한남용에는 제재가 필요하지만,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직권남용죄로 수사하는 접근은 정치적 개입으로 비칠 수 있다. 정치인을 수사하거나 재판했다는 이유만으로 ‘정치검사’, ‘정치판사’로 몰아가는 것은 공정한 법 집행에 대한 위협이 된다.

법왜곡죄가 따로 도입돼 있지 않은 현실에서 직권남용죄는 고위 공무원의 권한남용을 견제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형사 장치다. 직권남용죄는 권력 견제의 도구가 돼야 하지만, 공무원의 정당한 판단을 위협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직권남용죄의 구성요건을 명확히 하고, 그 적용 범위를 엄격히 제한하는 입법적 정비다. 권력 간 견제와 균형은 수사와 기소뿐만 아니라 모든 권력 작용 전반에 걸쳐 철저히 관철돼야 한다.

#직권남용죄#법 개정#권력남용#고위공직자#형법 제123조#수사권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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