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학기부터 도입된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를 교과서에서 교육자료로 격하시킨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다음 달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교과서에서 교육자료로 바뀌면 이를 사용할 의무 없이 학교장 재량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현재 AI 교과서 채택률은 34% 수준이다. 교과서 지위를 잃게 되면 정부의 구독료 지원도 줄어들어 사실상 교실에서 퇴출당할 것으로 보인다.
2023년 6월 교육부는 AI 교과서 추진 방안을 발표했고 그 후 약 1년 반 동안 교과서 개발과 검정, 교사 연수까지 속도전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학부모는 디지털 중독과 문해력 저하를 우려했고, 교사들은 양질의 연수가 부족하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의견 수렴과 현장 검증을 건너뛰고 올 3월부터 초중고 일부 학년을 대상으로 영어, 수학, 정보 과목에 AI 교과서 도입을 강행했다. 짧은 시간에 전면적인 의무 도입을 밀어붙인 결과, 교실은 혼란스럽고 학생들의 활용도는 저조했다. 5월 교사·학부모·학생을 대상으로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10명 중 7명이 “사전 준비 없이 졸속 시행됐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교육부는 지난해에만 기기 구입, 교사 연수 등에 5300억 원을 투입하는 등 AI 교과서 도입에 모두 1조2000억 원의 예산을 썼다. 민간에서 투자한 비용은 8000억 원이다. 졸속 폐기로 막대한 투자금을 날릴 처지인 20개 발행사는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며 반발하고 있다. 정부를 믿고 비용과 시간을 투자했는데 정책이 표변하면서 기업이 도산 위기에 놓였다는 것이다. 정책적 무능이 불러온 예산 낭비와 혼란이다.
학생에게 되돌릴 수 없는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새로운 교수법은 검증을 거듭해 신중하게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AI 교과서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한 채 정부가 과속한 탓에 결국 탈이 나고 말았다. 하지만 챗GPT, 제미나이 등 AI 서비스가 보편화됐고 장기적으로 교육 현장에서 AI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는 흐름이 있다. 학생 능력 맞춤형 교육이 가능하다는 AI 교과서의 장점도 있다. 졸속 추진에 이은 졸속 폐기가 되지 않도록 AI 교과서 도입의 문제점을 점검하고, 교육자료로 쓰더라도 그 효과는 검증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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