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72년 만의 ‘주한미군 역할 전환’… 대북 억지력 손상 없어야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8월 10일 23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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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지난 8일 경기 평택 험프리스 미군기지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주한미군 사령부 제공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주한미군은) 언제든 다른 곳으로 이동해 다른 임무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북한 대응에 더 큰 역할을 맡고 주한미군은 다른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발휘할 것”을 한국에 요구하고 있다고도 했다. 주한미군의 역할을 중국 억제로 돌리는 ‘전략적 유연성’ 개념을 실행에 옮기겠다는 뜻을 공식화한 것이다.

브런슨 사령관이 공식 기자회견에서 내놓은 이런 발언은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이후 72년간 유지돼 왔던 주한미군 체제에 일대 전환을 예고한 것이다. 25일로 조율 중인 한미 정상회담을 2주일 앞둔 시점에 나왔다는 점에서 주요 회담 의제가 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주한미군 재조정은 전 세계 미군의 최우선 임무를 중국 견제에 두고 동맹국 안보는 자국이 부담하게 하는 미 글로벌 전략의 일부다. 한국만 예외를 요구하기는 어려운 현실적 제약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의 일방적 결정만으로 한국이 미중 간 군사 분쟁에 말려들 여지를 줄 수는 없다. 브런슨 사령관은 주한미군의 한반도 밖 이동을 ‘막는 규정은 없다’고 했는데, 한국의 동의 없이도 유사시 주한미군의 대만 투입이 가능하다는 주장으로 읽힌다. 미국은 2006년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 없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 입장을 존중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이번 논의도 이런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주한미군 재조정이 대북 억지력 약화의 빌미가 돼서도 곤란하다. 브런슨 사령관은 “주한미군 숫자가 아니라 능력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한미 조율을 건너뛴 주한미군 감축의 신호탄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난해 북한의 핵 공격에 대응하는 시나리오를 한미 훈련에 반영하기로 할 정도로 주한미군은 대북 억지의 핵심 축이다. 대북 핵우산에 구멍이 생길 수 있다는 신호를 북한에 줘선 안 된다.

한반도 안보 환경이 아무리 변해도 한국을 향한 주된 위협이 북한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브런슨 사령관은 한국군이 전시 대북 방어를 주도하도록 하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대해 “앞당기려 지름길을 택하면 한반도 군사 대비태세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했다. 한미는 북핵 대응에 차질을 주면서 전작권 전환을 서두르기보다는 자강력 확보의 긴 안목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어떤 경우에도 대북 억지력 손상은 안 된다는 것이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우리 정부의 마지노선이 돼야 한다.


#주한미군#전략적 유연성#한미상호방위조약#한미 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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