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 놈 미국 국토안보장관은 8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파이브 아이스’ 국토안보 담당 장관 회의에서 취재진에게 “구금된 한국인들은 대부분 출국 명령을 무시했으며, 추방될 것”이라고 밝혔다. 런던=AP 뉴시스
미국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공사 현장에서 체포된 한국인 근로자 300여 명이 아직 풀려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 반(反)이민 정책 책임자 입에서 “훨씬 더 많은 단속 작전을 보게 될 것”이란 발언이 나왔다. 이들 근로자가 귀국한 뒤에도 미국에 공장을 짓고 있는 다른 우리 기업에 언제든지 비슷한 일이 닥칠 수 있다는 의미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국경 차르’로 불리는 톰 호먼 국경안보 총괄책임자는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더 많은 단속 작전을 수행할 것이다. 불법 체류는 범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조선업체를 비롯해 반도체·자동차·2차전지·철강 기업들의 미국 투자 계획에 일제히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에 제조시설을 짓고 생산시스템을 돌리려면 사업 초기 한국 엔지니어와 근로자의 파견은 불가피하다. 제조업 기반이 무너진 현지에서 전문 인력의 조달이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트럼프 정부 들어 이민당국의 비자심사 강화로 전문직 취업비자, 주재원 비자를 받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체포된 한국 근로자 다수가 회의 참석·계약을 위한 단기 상용비자, 관광용 전자여행허가(ESTA)를 갖고 있던 이유다.
이번 사건이 터진 뒤 대기업들이 파견인력을 황급히 불러들이고, 출장을 전면 중단시켰지만 임시 조치일 뿐이다. 미국에 공장을 짓는 우리 기업 대다수는 “취업비자 나오기만 기다리다간 절대로 예정된 공기를 맞출 수 없다”고 호소한다. 그만큼 단기 비자를 이용해 근로자를 파견하는 관행이 폭넓게 퍼져 있다는 의미다. 이제라도 정부가 대기업과 협력업체들의 현지파견 직원 수, 체류 자격에 대한 전수조사를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타결된 2007년 미국과 협의를 시작한 전문직 취업비자 도입 문제를 지금껏 해결하지 못한 건 뼈아픈 부분이다. 2012년 FTA가 발효된 뒤 경제계가 이 문제를 풀어줄 것을 거듭 요청했지만, 역대 어느 정부도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채 방치해 왔다. 반면 미국과 FTA를 맺은 캐나다, 멕시코에는 전문직 비자가 무제한으로 발급되고, 호주는 연간 1만 개가 넘는 비자쿼터를 확보했다. 이번 기회에 정부는 미국에 파견되는 우리 근로자들이 적법한 체류 자격을 갖추고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비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제2 ‘조지아 구금 사태’가 벌어지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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