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장기 검토’ 딱지 붙여놓고 마냥 뭉개는 中企 규제만 1444건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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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들이 제도 개선을 요구했지만 정부에서 ‘장기 검토 과제’로 처리한 규제가 지난해 1444건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지난해 ‘중소기업 옴부즈만’을 통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에 5093건의 규제 개혁을 건의했는데, 28%가 장기 검토로 결론이 난 것이다. 4년 전과 비교해 장기 검토 규제는 3.5배로 급증했다. 명목상 시간을 두고 검토하겠다는 것이지만, 규제 개혁에 소극적인 공직사회의 복지부동을 보여주는 전형이 아닐 수 없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살펴본 장기 검토 규제 사례들은 기가 막힌다. 대중교통이 불편한 경기 외곽에 있는 한 중소기업은 임원들 차로 직원들을 출퇴근시킨다. 인근 기업들과 함께 통근용 전세버스를 대여하려다가 막힌 탓이다. 전세버스 공동 계약을 막는 시행령을 풀어달라고 요청했지만, 소관 부처는 장기 검토 과제로 지정한 뒤 3년째 감감무소식이다. 전남 완도군의 중소기업은 일반 택배보다 1.5배 비싼 도서산간 택배요금을 내고 있다. 주요 섬들이 연륙·연도교로 이어져 육지와 다를 바 없지만 해당 부처는 운임 기준과 관련된 법 개정을 두고 장기 검토 처분을 내렸다.

민감하거나 거창한 규제도 아니고 중소기업들이 일상에서 부딪히는 현장 밀착형 규제들을 바꾸자고 한 것인데도 이 모양이다. 여기에는 혹시라도 규제 개선 과정에서 기득권자의 반발이 제기되는 골치 아픈 상황을 피하려는 공직사회의 보신주의가 짙게 깔려 있다. 장기 검토 과제로 처리하면 규제 당국이 민원에 답변을 할 의무도 없기 때문에, 되는 것도 아니고 안 되는 것도 아닌 상태로 길게는 몇 년씩 질질 끌면서 면피를 한다는 것이다. 말이 좋아 장기 검토이지 기업들에는 ‘희망 고문’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기업들은 ‘개선 불가’보다 오히려 장기 검토로 묶이는 게 더 답답하다고 하소연한다.

법적 근거가 모호한 ‘그림자 규제’나 자의적 판단에 의한 ‘오락가락 규제’ 등으로 기업들이 골탕 먹는 일이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발굴한 현장 규제 100건 중에서도 74건이 시행령 개정 등을 통해 즉시 바꿀 수 있는 것이었지만 상당수가 그대로다. 장기간 방치된 규제가 더욱 견고해져 깨기 힘든 ‘암반 규제’가 되기 전에 개혁에 속도를 내야 한다.


#중소기업#장기검토과제#규제개혁#옴부즈만#지방자치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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