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매뉴얼 지옥’이 된 학교… 짓눌린 교사들, 실종된 현장교육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9월 9일 23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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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당국이 학부모 민원, 안전사고 같은 학교 현장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각종 매뉴얼을 만들었지만 교사에게 그 책임을 집중시키는 바람에 오히려 정상적인 교육 활동이 위축되고 있다. 특히 ‘학생 안전 매뉴얼’은 6월부터 교사가 사고 예방 및 안전 조치 의무를 다했을 경우에 면책하는 조항을 둔 학교안전법이 시행되면서 교사들에게 막중한 부담이 되고 있다.

이 조항은 2022년 11월 강원 속초에서 초등생이 버스에 치여 숨진 사고로 인솔 교사가 유죄 판결을 받자 교사를 형사 책임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신설된 것이다. 하지만 ‘의무를 다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선 238쪽에 달하는 매뉴얼을 빠짐없이 이행해야 한다. “매뉴얼 지옥에 빠졌다”는 교사들의 자조가 나오는 이유다.

현장체험학습을 예로 들면 출발하기 전에 여행자보험 가입 여부 확인, 식품 알레르기 식단 점검, 신체 허약 학생 파악, 개인별 의약품 사전 확인 등이 모두 교사의 몫이다. 교사가 음주 측정기를 들고 다니며 차량 출발 직전뿐만 아니라 경유지, 숙박지 출발 직전에도 운전자의 음주 여부를 확인하기도 한다. 교사가 작성하는 안전사고 예방 리스트에는 객실마다 구비된 완강기가 정상 작동되는지도 포함돼 있다. 완강기를 일일이 작동시켜 볼 수 없으니 순히 설치 유무만 확인하고, 혹시 잘못될까 불안에 떤다고 한다. 과연 교사 1명이 수십 명의 학생을 인솔하며 이행할 수 있는 일인지 묻게 된다. 이러니 현장체험학습을 아예 취소하는 학교가 급증한다.

지금의 매뉴얼은 안전사고를 실질적으로 예방하기보다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를 가리는 ‘매뉴얼을 위한 매뉴얼’에 가깝다. 정작 교육부나 교육청은 뒷짐을 지고, 교사들에게 돌발 변수까지 통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교사는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방어적으로 될 수밖에 없고 교육 활동이 축소돼 그 피해는 학생에게 돌아간다. 학생과 학부모도 스스로 안전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교육당국은 안전 전문 인력을 지원하는 등 교육 주체들이 책임을 나눠야 한다.


#학교 안전#교사 책임#매뉴얼 부담#학생 안전 매뉴얼#현장체험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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