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가서 과일만 실컷 먹고 와도 남는다는 나라가 베트남, 태국, 대만 등이다. 종류도 많고 값도 싼 ‘과일 천국’이다. 그런데 베트남에선 성주 참외, 태국에선 논산 딸기, 대만에선 경북 샤인머스캣이 최고급 과일로 대접받으며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당도가 높고 식감이 아삭한 것이 비결이다. 한국 과일은 안전하다는 인식도 퍼져 있다. 현지 과일보다 몇 배나 비싼데도 매년 수출 물량이 늘고 있다.
▷2001년 농축산물 시장을 대폭 개방했을 때만 해도 국내 한우 농가가 줄줄이 문을 닫을 것으로 봤다. 24년이 지난 지금은 오히려 수출 품목이 됐다. 두바이 5성급 호텔 한식 레스토랑에 공급되고, 말레이시아에선 할랄 인증을 통과했다. 구웠을 때 일본 와규보다 스르르 녹는 감칠맛이 일품이라는 평가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찾은 경남 합천군 축산 농가에선 변정일 씨(47)가 인공지능(AI)으로 사육 환경을 모니터링해 육질 1++ 이상의 고급 한우로 키우고 있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김밥 따라 먹기처럼 한국 음식에 대한 수요가 늘자 올해 상반기 쌀 가공식품 수출액이 1억3000만 달러를 넘어섰다. 역대 최대다. 쌀 가공식품 60%가 미국에 수출된다. H마트 등 한국 마트뿐만 아니라 ‘코스트코’, ‘트레이더 조’ 등 현지 마트에서도 김밥, 햇반이 팔려 나간다. 글루텐프리(gluten-free)를 내세운 쌀과자나 떡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밀가루 속 단백질인 글루텐은 미국에선 흔한 알레르기 물질이라 쌀로 만든 음식은 건강식으로 통한다.
▷K팝, K드라마가 K푸드를 ‘힙’한 음식으로 만들었고 덩달아 K농산물의 수요도 급증했다. 대표적인 내수 산업으로 신토불이(身土不二)를 강조하던 시절에 비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농업에 로봇, AI 등 첨단 기술이 빠르게 접목되기 시작한 것도 수출 산업으로 도약할 기회다. 노동집약적이고 고령 농부가 종사하는 농업에서 생산성 향상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이찬 씨(38)의 경남 함양군 과수원에선 자율주행 기능이 탑재된 방제 로봇이 구불구불한 길을 돌며 농약과 영양제를 척척 투입했고, 이규화 씨(30)의 경기 화성시 스마트팜에선 로봇이 센서를 통해 숙성도를 판단해 잘 익은 딸기를 땄다.
▷지난해 농식품 수출액은 99억8000만 달러로 K뷰티 인기를 업은 한국 화장품 수출액(102억 달러)에 맞먹는다. 그 성장세가 예사롭지 않다. 제조업 리쇼어링과 관세 장벽 등 세계 무역 질서가 재편되는 와중에 농업이 수출 효자로 재평가되고 있다. 식량 안보 확보 차원에서도 농업을 첨단 산업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 지금도 창농, 귀농을 택한 청년 농부들이 귀한 땀을 흘리고 있다. 이들이 수출 역군이 될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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