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영]“유튜브 권력에 머리 조아리며 정치할 생각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9월 9일 23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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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사위’라는 점을 빼고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더불어민주당 곽상언 의원이 뉴스의 중심에 섰다. 여권의 실력자 김어준 씨를 비판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면서다. 초선인 곽 의원은 ‘올해 8월까지 1년간 김어준 유튜브 방송에 한 번도 출연하지 않은 여당 의원은 65명에 불과하다’는 주간지 보도를 인용하며 “그 65명 중 한 명이 저 곽상언이다. … 저는 유튜브 권력에 머리를 조아리며 정치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김어준의 유튜브 채널은 민주당과 좌파 정치인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출연하고 싶어 하는 미디어 권력이다. 주간경향 집계 결과 1년간 여당 의원 106명을 포함해 119명의 국회의원이 832회 출연했다. 김민석 총리,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 강유정 대변인과 행정안전부 해양수산부 고용노동부 장관 등 현 정부 고위직 인사들도 두루 포함돼 있다. 보수 쪽에서는 전한길TV가 새로운 유튜브 권력으로 부상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선 당 대표가 되려는 이들이 줄줄이 전한길TV에 출연해 ‘면접’을 봤다.

▷정치 유튜브의 힘은 구독자 수, 그리고 강성 당원들의 귀를 잡고 있는 데서 나온다. 곽 의원은 “우리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출연하면 후원금도 모으고 좋은데 왜 출연하지 않느냐”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여당 대표 선거는 여당 내 ‘보이는 손’이라 불리는 김어준 채널의 힘을 확인하는 계기였다. 정청래 대표의 이 채널 출연 횟수는 28회, 박찬대 의원은 2회였다.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뒷말이 나왔다. 전한길TV가 들었다 놨다 했던 국민의힘 전당대회도 ‘전심’의 승리로 끝났다.

▷한국처럼 정치 채널이 유튜브 실시간 방송 때 후원금 순위 상위를 장악하고 있는 나라도 드물다. 김어준이 ‘정치 무당’이라 불리듯 정치 채널 진행자들은 신생 교파를 이끄는 종교 지도자 같다. 선과 악이 분명한 세계관으로 복잡한 현실을 단순명쾌하게 해석하며 듣고 싶은 얘기만 듣고 싶어 하는 신도들을 모은다. 정치 채널 경쟁은 선명성 경쟁이다. 유튜브 권력이 커질수록 정치가 양극단으로 치닫고 온갖 음모론에 공론장이 난장이 되는 이유다.

▷정치 유튜버들은 유명 정치인들을 출연시켜 돈 안 들이고 쉽게 조회수 장사를 한다. 최근엔 화장품, 흑염소, 소갈비 광고 패널을 걸어놓고 정치인들을 부른다. 사회 갈등을 조율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치인들이 유튜브의 적대적 진영정치에 편승하는 것도 모자라 돈벌이에까지 동원되고 있다. ‘다음 경선은 어려울 것’이란 악플 세례를 받고 있는 곽 의원의 소신 발언이 힘만 있고 책임지지 않는 유튜브 권력에 머리 조아린 정치 권력의 부끄러운 모습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곽상언#김어준#더불어민주당#유튜브 정치#정치 권력#전한길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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