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장원재]APEC의 멋과 맛을 살린 K-컬처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1월 2일 23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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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 만찬은 한마디로 우리의 멋과 맛이 어우러진 자리였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실제 모델인 배우 차은우가 사회를 봤고, 가수 지드래곤은 갓을 쓰고 축하 공연을 했다. 한국계 셰프 에드워드 리가 화합의 의미를 담아 나물 비빔밥을 차려냈다. 싱가포르 총리와 일본 외상, 멕시코 경제장관 등이 “스펙터클한 갈라 디너 쇼”라며 사진과 동영상을 공유했다.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는 ‘K팝이여 영원하라(Kpop Forever)’란 해시태그까지 달았다.

▷정부는 지난해 6월 경주를 APEC 정상회의 개최지로 선정하면서 ‘문화의 멋’을 선보일 기회라는 걸 이유로 들었다. 천년고도 경주에서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소프트 파워’를 보여주겠다는 구상이었다. 한미·한중 정상회담을 공식 행사장인 화백컨벤션센터 대신 경주박물관에서 연 것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천마총 금관 모형을 선물한 것도 ‘한국적 아름다움’을 보여주려는 시도였다. 신라 금관 6점 합동 전시는 이를 관람한 정상들을 매료시킨 기획이었다.

▷정상들과 기업인들을 사로잡은 것 가운데 ‘한국의 맛’을 빼놓을 수 없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선물 받은) 황남빵을 맛있게 먹었다”고 말한 사실이 전해지며 황남빵 매장 앞에는 긴 줄이 생겼다. 이재용 정의선 회장과 ‘치맥 회동’을 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한국 치킨은 세계 최고”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CNN은 세 거부의 회동 소식을 전하며 “치맥은 한국을 방문하는 누구나 꼭 먹어야 할 조합”이란 설명을 달았다. 라면과 호떡, 찰보리빵, 약과, 호두과자 등도 행사장 안팎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K푸드의 저변을 한층 확장시켰다.

▷K뷰티 열기도 뜨거웠다. 20대 후반인 캐럴라인 레빗 미 백악관 대변인은 국내 브랜드 화장품 13종을 직접 구입하고 인증샷과 함께 ‘한국 스킨케어 추천 아이템’이란 글을 남겼다. 조선미녀 인삼아이크림 등 이름만 봐도 한국산인 동시에 호기심을 자극할 법한 제품들이었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의 배우자인 다이애나 폭스 카니 여사는 김혜경 여사에게 “딸이 사 오라며 K화장품 리스트를 줬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APEC 기간 경주 시내 화장품 매장에는 세계적인 명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APEC은 정치·경제 지도자의 모임이지만 이번 회의에서는 K컬처가 또 하나의 주역이었다. 천년사찰 불국사를 돌아보며 ‘어메이징’을 연발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지드래곤 공연을 직관한 덕분에 “주변의 부러움을 샀다”고 말한 싱가포르 총리 배우자 등에게 한국의 소프트파워가 선사한 감동적인 순간이 오래 기억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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