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서영아]노년의 최대 어려움은 ‘고독’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9월 3일 23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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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아 콘텐츠기획본부 기자·국장급
서영아 콘텐츠기획본부 기자·국장급
풍요로운 노후에 꼭 필요한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흔히 돈, 건강, 행복을 말한다. 돈과 건강은 누구나 알기 쉽지만 행복은 좀 자의적이다. 그래서 ‘사회적 관계’ ‘삶의 보람’ 등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혼자 고립되지 않고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상태다.

은퇴 전후 중장년이 가장 간과하기 쉬운 게 사회적 관계다. 직장 생활이 삶의 전부였던 사람일수록 위험하다. 무수한 경험자들 얘기에 따르면 ‘백수 과로사’는 잠시, 반년만 지나면 직장을 통한 인간관계는 대부분 연락이 끊긴다. 삶에 고독이 찾아온다.

‘고독력’을 키우라지만

바야흐로 세상은 각자 알아서 살아남는 ‘각자도생’의 외로운 사회다. 그래서인지 나이가 들면 어차피 고독해지는 거라며 ‘고독력(力)’을 키우라는 조언도 흔히 들린다.

왜 이렇게 외로운 사회가 된 걸까. 전문가들은 1인 가구 증가, 양극화와 빈곤, 고령화 등을 지적한다. 한국은 전체 가구 셋 중 하나(36.1%)가 혼자 살고, 이 중 35.5%는 고령자 가구다. 2040년이면 고령자 10명 중 4명이 혼자 살 것으로 전망된다. 노후 독거는 사회적 고립을 가져오기 쉽고 흔히 거론되는 고독사 위험도 커진다.

누구나 살면서 고독을 느낄 수 있다. 문제는 이를 계기로 고립의 늪에 빠지기 쉽다는 점이다. 퇴직이나 사별, 사업 실패 등으로 우울과 소외를 느낄 때 터놓고 얘기하거나 의지할 사람이 없다면 고립 상태가 된다. 통계청이 매년 내놓는 사회적 고립도 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 10명 중 3명이 ‘신체적, 정신적 위기에 도움받을 곳이 하나도 없다’고 답했다(2023년). 연령대별로 보면 이 응답은 20대에서 24.5%였던 것이 60세 이상에서는 40.7%로 나이에 정비례해서 늘었다. 만약 60세 이상을 세분화해서 조사했다면 더 확연한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고독에 대한 경각심은 해외에서 이미 높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 제러미 노벨 교수는 저서 ‘외로움 벗어나기 프로젝트’에서 고독은 매일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만큼 건강에 해롭다고 했다. 고독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면역체계를 약화시키고 염증을 촉진해 심혈관계 질환, 암, 치매, 당뇨병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정신적으로도 외로움은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자신을 방임하게 하며 사회적 교류를 막아 안전망을 잃게 만든다. 노벨 교수가 제시한 해결책은 ‘타인과의 연결과 유대’다.

2018년부터 고독을 사회적 질병으로 규정한 영국에서는 의사가 환자에게 약 대신 사람들과 함께하는 다양한 활동을 제공하는 ‘사회적 처방’을 시작했다.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교류를 복원하자 생기 없던 노인들이 삶의 활력을 되찾았다는 보고가 적지 않다.

방치된 중간층, 스스로 고립 떨치자

얼마 전 만난 70대 변호사의 말이 마음에 남았다. 그는 “한국 노년의 가장 큰 문제는 고독”이라며 “아주 못사는 분들은 나라가 돌봐 주고 아주 잘사는 분들은 알아서 하면 되는데, 중간층은 대책 없이 버려져 있다”고 했다.

고독까지 돌보는 복지의 손길이 기초생활보장 대상자에게만 미치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어중간한 노년은 스스로의 힘으로 사회적 고립을 떨치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많이 움직이고 많이 만나고 주변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가벼운 일이나 봉사활동을 통해 삶의 보람을 찾아 나가야 한다.

지난달 13일 국정기획위원회가 내건 새 정부 국가 비전에서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이 눈에 띄었다. 여당 일각에서 ‘국민총행복’을 늘리자는 법안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도 있다. 개인의 노력과 더불어 국가도 노년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는 시스템을 더 많이 구축해 줄 것을 기대한다.

#노년#노년 고독#중장년#고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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