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유재동]시장경제의 파괴자들에 맞서는 법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9월 4일 23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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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동 산업1부장
유재동 산업1부장
“애덤 스미스나 밀턴 프리드먼이 지금쯤 무덤에서 몸을 뒤척이고 있을 것이다.”(경제전문지 포천)

영미권 주류 경제학의 선구자들이 당장에라도 관 뚜껑을 열고 뛰쳐나올 태세다. 시장경제의 본산이라는 미국에서 러시아나 중국에서 있을 법할 일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어서다. 주범은 물론 트럼프다. 시장과 기업, 동맹국에 대한 그의 무분별한 갑질과 개입으로 인해 자유무역과 시장 존중, 작은 정부 등 미국 보수 공화당이 전통적으로 추구해 온 가치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마가(MAGA)의 자본주의 공습이 본격화됐다.

자유시장의 원칙 훼손하는 트럼프

트럼프의 최근 행보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 아니라 절대권력과 폭군 성향을 지닌 기업 오너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우선 공공과 민간을 가리지 않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숙청한다. 트럼프는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중국 공산당에 연루돼 있다고 공격하며 그를 쫓아내려 했고 골드만삭스에는 관세 정책이 미국 경제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 분석한 이코노미스트의 교체를 요구했다. 사기업의 이윤을 갈취하고 경영활동에 개입하는 것은 기본이다. 엔비디아 등 반도체 기업에 중국 수출을 허가하는 대가로 수익의 15%를 정부에 납부하라고 했고, 정부 보조금을 받는 기업들에는 지분을 내놓으라고 강요하고 있다. 심지어 코카콜라 CEO에게 제품에 넣는 옥수수 시럽을 사탕수수 설탕으로 바꾸라는 것 같은 시시콜콜한 요구까지 수시로 한다.

트럼프가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며 자기 이익을 취하는 냉혹한 기업인 마인드를 갖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관세를 무기로 동맹국을 쥐어짜는 것을 넘어, 심지어 자국 기업을 상대로도 이런 행위를 한다는 것은 예상하기 어려웠던 바다. 문제는 미국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앞으로도 지금의 자국 우선주의와 국가 자본주의 노선을 포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변화를 이제 현실로 인정하고 이에 대응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트럼프 대처법’을 면밀하게 연구한 덕분에 한미 정상회담을 비교적 무난하게 치를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힘센 자의 비위를 맞춰가며 눈앞의 위기만 모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가 최강대국 미국처럼 해외 기업들을 윽박지르면서 투자를 압박하거나 미국에 보복 관세를 때리며 이 어리석은 전쟁에 뛰어들 수는 없다. 그렇다고 가만히 당하고만 있어서도 안 된다. 미국에서도 계속 살아남기 위한 노력을 벌이되, 다른 수출시장도 부지런히 찾아 나서야 한다. 시장경제와 자유무역을 여전히 신봉하는 다른 나라들과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해 가는 과정도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검토하며 대안을 모색하기로 한 것은 여러모로 잘한 결정이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는 항상 시야를 외부에 두고 있어야 한다. 미국이 관세 폭탄을 내세워 기업들의 투자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것에 대비해 국내 산업 공동화를 막기 위한 대책도 세워야 한다.

안팎의 도전에 맞서 생존전략 찾아야

“누구도 우리 경제를 쉽게 넘보지 못하게 본연의 실력을 길러야 한다”는 원론적이고 뻔한 얘기까진 하지 않겠다. 다만 우리는 트럼프뿐 아니라 내부의 적들과도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시장경제의 파괴자들은 우리 안에도 있다는 뜻이다. 이익단체에 포획돼 규제개혁을 등한시하는 정부, 잇단 반시장 정책으로 혁신기업의 싹을 잘라버리는 정치권, 특혜와 이권을 놓지 않으려는 고인물 기득권 세력 모두가 자본주의를 망치는 공범이다. 나라 안팎으로 적들이 늘어나고 성장률이 곤두박질치는 상황일수록 시장경제 질서를 더욱 확고히 지키며 버텨 나가는 수밖에 없다.

#트럼프#시장경제#자유무역#미국 보수#자국 우선주의#국가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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